각자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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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일보
  • 승인 2016.11.0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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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불명의 '더치페이'란 단어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어 안타깝다. 그동안은 개인주의와 편의주의를 대변하는 젊은 층에서 주로 통용됐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거나 여럿이 식사를 할 때 각자 n분의 1만 계산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세를 지지도 않아 청년시대 소비문화를 나타냈다. 지난 2015년 10월 트렌드모니터가 20, 30대 미혼남녀 493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비용을 각자내기 하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5%가 '다소 또는 매우 찬성 한다'라고 답했음이 이를 입증 한다.

더치페이는 '비용을 각자 서로 부담 한다'는 의미다. '더치 트리트(Dutch treat)'가 유래다. 더치는 '네덜란드의' 또는 '네덜란드 사람'을, 트리트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도 썩 긍정적인 용어가 아니다. 17세기 후반 3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해상권은 점차 영국으로 넘어갔다. 두 나라의 갈등은 계속된다. 이에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을 탓하기 시작하면서 '지불하다'는 '트리트' 대신 '이기적이고 째째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페이(pay)'를 가져다 붙인 듯하다.

지난달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 '더치페이'란 용어가 봇물이다. 스마트폰 '더치페이 앱' 이 그 사례다. 법 시행 이후 가입자 수의 증가를 가져왔다. 금융권 등이 더치페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된 스마트폰 서비스를 내놓고 있어서다. 이 앱은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내야 할 금액을 문자메시지 등으로 알려준다. 그러면 계좌번호나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상대방 전화번호만 알면 돈을 보낼 수 있다. 시중 은행들의 경우 평균 앱 가입자 수가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더치페이'는 순 우리말이 아닌 외래어다. 네덜란드인들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말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용어 사용이 굳어지고 있어 아쉽다. 옥스퍼드영어사전 등 전 세계으로 정평이 나있는 어떤 영어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콩글리시'다. '더치 트리트' 또는 '고(Go) 더치'가 올바른 외국어(영어) 표현이다. '밥을 먹은 뒤에 밥값은 각자 낸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각자내기'가 있다. 투명사회를 지향하는 '김영란법 시대'에 국적불명의 '더치페이'보다 '각자내기'란 단어가 훨씬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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