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3조원 시대
주세 3조원 시대
  • 전주일보
  • 승인 2016.09.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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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흥이 많았다. '음주가무(飮酒歌舞)'란 말에서 보듯 술을 음식의 하나로 여기고 즐겼다. 원시시대에는 얻기 쉽고 만들기 쉬운 과실주가 유행했다, 유목시기에는 짐승의 젖을 이용한 유주(柚酒)가, 농경시대에는 곡식을 발효한 곡주(穀酒)가 각각 발달했다. 술은 노동의 피로를 덜고 각 부족의 단합을 과시하는데 필수적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삼한시대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의 군중대회에서 백성들이 밤낮으로 '식음'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구려의 주몽신화에 등장하는 술은 의미심장하다. '제왕운기'에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족장 하백의 딸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니 모두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큰 딸 유화는 해모수에 반해 그날 밤 술에 취한 채로잠자리를 같이했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해 낳은 아이가 바로 시조 주몽이다. 또 '동해석사'와 '지봉유설'에서는 신라 시인 옥계생(玉溪生)의 ‘한 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

우리민족은 여염집에서 왕가와 양반까지 자유롭게 술을 빚어 마셨다. 이러한 술에 세금을 부과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일제가 1905년부터 3년간 조사한 결과 당시 제조장 수가 15만5,832장(場)이나 될 정도로 일반적이었다. 조사를 기반으로 조선총독부는 1907년 7월 최초로 주세법을 공포했다. 이때부터 술이 세금원으로 전락, 수탈의 대상이 된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술에 부과하는 세금은 가혹해졌다. 1961년 개정된 주세령은쌀 사용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각 가정에서 담그는 술을 밀주로 규정,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허가된 양조장 마저 통제하고 나섰다. 1970년에는 제한적으로 양조를 신규허가하면서 세금을 매겨세수를 더욱 강화했다. 2015년에야 비로소 판매목적만 아니면각 가정에서 술을 담가 먹는 것이 허용됐다.

지난해 주세가 사상 처음 3조 원을 돌파했다. 1990년 1조원 수준에서 IMF 금융위기 직후인 1999년 2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17년 만에 3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민족이 자유롭게 즐겼던 술에부과해 생긴 세원이다. 주세는 간접세로 거두기 쉽고 반발도 심하지 않다.

특히 주세의 대부분은 서민들이 즐겨먹는 소주와 맥주가 차지한다.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소주와 맥주로 '신세'를 달랜다.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주세는 산세타령하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린다. 주세 3조원시대가 반갑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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