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재활용’
정치인의 ‘재활용’
  • 전주일보
  • 승인 2015.01.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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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전북은 정치인의 재활용에 대해 인색하다. 한번 선거에 떨어지고 나면 용도를 폐기해 버린다.

그래서 재기(再起)하기에 몹시도 척박한 땅이다. 그들의 어떤 노력도 ‘정치재기’를 위한 선거활동으로 폄훼해 버리곤 한다.

그래서 유능했지만, 도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정치인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버린다.

새로운 사람을 선호하지만, 막상 그들을 뽑고 나면 ‘구관이 명관’이었음을 후회하기도 한다.

정세량 국제뉴스 정치부장

그리고 나서 “이제 갓 정계에 입문한 이에게 능력이 없다”고 핀잔을 준다. 현재 전북정치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웃 광주, 정찬용 수석 기용

광주시가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동차 100만대 기지 조성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 추진위원장으로 정찬용(63)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영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광주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를 진두지휘할 정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시절 인사수석을 지낸 뒤 청와대를 나와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장을 역임했다.

이런 인연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 사장과는 관계가 각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정 회장이 직접 광주를 찾아 현장을 방문했고, 정 전 수석을 만나 향후 사업에 대해 기탄없는 의견을 나눴을 정도다.

이와 관련, 광주시 한 관계자는 "정 전 수석은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공을 들여 추대했다"면서 "전문가그룹은 위원회 산하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낙하산, 보은 인사가 아니다’고 밝힌 광주시 주장대로 자동차 100만대 기지 조성사업에 정 전 수석이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홍준표, 최구식 전 의원 임용

정치권의 이슈메이커로 통하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디도스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출당됐던 최구식 전 의원을 정무부지사로 기용해 관심을 끌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최 전의원은 진주 갑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지만, 27.37%의 득표로 선전했었다.

당시 당선인은 현재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대출 의원이다. 때문에 박대출 의원 입장에서 최 전 의원의 정무부지사직 기용은 매우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의 관계를 따져보면, 19대 총선에서 나란히 낙선한 두 사람은 2012년 12월 경남지사 보궐선거을 앞두고 다시 뭉쳤고, 최 전 의원은 '홍준표 선거대책본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보은인사라는 비판도 있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눈을 부릅뜨고 있음에도 경쟁자를 공직에 기용한 용인술이 눈에 띈다.

순혈주의 벗어나야

전북에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전북에도 따지고 보면 전직 국회의원도 있고, 단체장도 있다.

아깝게 떨어진 낙선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불러주는 사람은 없다. 현직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고 히트를 누렸던 ‘미생’이라는 드라마는 스펙이 거의 없고, 그것도 고졸출신의 한 청년 인턴이 기성사회의 두꺼운 벽과 부딪히는 과정을 잔잔히 보여줘 깊은 감동을 주었다.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그가 남긴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는 말은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전북이 폐쇄적인 지역사회로 고착되면서 자기사람만 신뢰하는 ‘순혈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중세유럽이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그리스 문화를 수용했기 때문이고, 미국이 최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인종을 수용한 개방성 때문이다.

과거 전북 정치는 화려했다. 70년대 박정희 시대에 야당 총수는 물론 기라성 같은 야당의 거물 정치인들의 전북출신이었다.

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시절에도 여당의 핵심세력은 바로 전북출신 정치인이었다.

이런 전통이 어느 때부터인가 왜소해 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한민국의 ‘정치적 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세월이 묻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정치의 영욕 속에서 실패의 맛을 본 정치인들을 현실에 맞게 재기용할 때 더 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정치인 ‘재활용 시장’에 눈을 돌리면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개방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전북의 문화도 중요하다.

/정세량=국제뉴스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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