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버리고 도망간 일본의 수치
칼을 버리고 도망간 일본의 수치
  • 전주일보
  • 승인 2011.11.04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은 장수(將帥)의 상징이다.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서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오른 손으로 칼을 부여잡고 있다. 동상이 처음 세워졌을 때 충무공이 왼손잡이냐 아니냐로 논난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여서 당연히 왼손에 칼을 쥐고 있어야 옳을텐데 어째서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는지 지금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순신이 왼손잡이였다는 증거도 없다. 당시 여러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는데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튼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간에 충무공은 죽은 지 400여 년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칼을 쥐고 있다. 후인이 만든 동상이긴 하지만 장군이 칼을 놓아버리면 그 때부터 장군도 아니다. 더구나 전쟁에 패배한 다음 지휘도로 지니고 있던 칼을 버리고 도망쳤다면 이는 비겁자의 상징이 된다.

군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칼을 사용하지 않는 현재에도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의 지휘관들을 임명할 때 반드시 지휘의 상징물로 칼을 하사한다.

일본은 무사도의 나라다. 무사는 명예의 상징으로 언제나 칼을 지니고 다녔으며 언제 어느 때라도 적을 만나면 베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사무라이의 신분은 사회 상위계층에 속한다. 무사로서의 명예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비겁한 행동은 금기다. 무사의 생명인 명예가 훼손되었을 때에는 그 죄를 씻기 위해서 감연히 할복(割腹)으로 명예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나, 사회활동 중에 명예가 손상되었던 무사가 할복으로 자결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 무사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할복제도는 요새는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아직도 그 전통은 남아있다고 보인다. 유명인사의 비리나 부정이 터졌을 때 장본인은 감옥에 가지만 비서들이 할복하는 일이 보도돼 일본인의 독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전통의 나라인 일본의 최고 장수가 전쟁에 패한 후 최고지도자로부터 하사받은 칼을 버리고 도망쳤다면 얼른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사실로 드러나 화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일본에서 최대부수를 발행하는 아사히신문에서 이를 보도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칼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신수길은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을 조선침략의 선봉으로 임명하며 가등청정에게 풍신수길이 하사한다는 명문(明文)을 새겨 줬다. 소서행장은 수군을 관할하고 가등청정은 육군을 관장하기로 분담했지만 그들은 누가 빨리 서울을 점령하느냐 하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초반전은 그들의 독무대였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던 조선의 군대는 일패도지했다. 선조 왕은 몽진(蒙塵)에 나섰지만 따르는 신하들이 많지 않았다. 제 목숨 부지하기에 바빠 모두 도망쳤기 때문이다.

가등청정은 기세 좋게 평양성까지 점령했다가 명나라의 개입으로 이여송에게 쫓겨 도망친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왜군과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지루한 휴전회담으로 갈피를 잡기도 한다. 일단 물러갔던 왜군은 정유년에 다시 쳐들어와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장장 7년을 끈 장기전 끝에 끝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조선 땅은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극도의 피폐에 빠지는 비참상을 노정(露呈)한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핍박과 위협은 그 뒤에도 계속된다.

이러한 역사의 뒤안길에 이번에 발견된 가등청정의 칼은 비겁했던 일본의 장수 한 사람의 행적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화제꺼리가 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김광식이 조선족인 중국여인과 결혼한 후 부인의 친정집에 전해 내려오는 칼 하나를 얻게 된다.

그 칼은 놀랍게도 풍신수길이 가등청정에게 하사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김광식은 중국수장가협회 학술연구부 과학검측실험실에 칼의 진품 여부를 문의한다. 혹시 가짜일 수 잇다는 염려에서다.

오래된 골동품의 경우 탄소실험을 통해서 수령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 이런 모든 실험을 통하여 데이터를 손에 쥔 김광식은 일본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이 칼은 일본의 장군이 전쟁에 패하여 황급하게 도망치는 과정에서 미쳐 챙겨가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일본의 국보 1호는 한국에서 강탈해 간 반가사유상이다. 이를 한국에 반환해야만 한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있다. 이를 모두 반환한다면 나는 기꺼이 일본의 수치로 기록될 수도 있는 이 칼을 돌려주겠다.”

김광식은 칼의 값을 얘기하지 않는다. 아사히 기자가 일방적으로 4억엔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지만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아무튼 두 나라 사이에 개입되어 있는 전쟁의 비극 속에서 탄생된 칼의 역사를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침략을 감행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수치와 분노를 함께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칼은 침략의 상징이지만 이제는 평화를 노래할 때다. 빼앗기만 했던 일본은 무사도의 정신을 되찾아가야만 한다. 칼을 돌려받고 문화재를 반환하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