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금
황 금
  • 전주일보
  • 승인 2011.06.1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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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골드러시가 인 것은 1848년 1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 사는 한 노동자가 네바다에서 사금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이 뉴스를 전해 들은 사람들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미국 서부로 몰려 들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황금바람은 콜로라도, 아이다호, 몬태나로 퍼졌고 캘리포니아는 순식간에 인구 10만을 돌파했다. 한낱 시골에 불과했던 샌프란시스코가 일약 인구 2만의 도시로 커진 것도 이 때다.

황금에 얽힌 인간의 희비극은 무성영화시대의 명우 채플린의 작품 '황금광 시대'에도 그려져 있지만, 남미의 '엘도라도(黃金鄕)' 전설을추적해 황금을 찾아 각지를 탐험한 스페인의 탐험대 얘기에도 많다. 그러나 거슬러 오르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서양에 동양을 소개하면서 동양은 황금과 후추의 보고로 알려진 것도 세계의 역사를 바꿨다.

15세기 이후 서양인들은 황금과 후추를 찾아 동양으로 모험을 감행하면서 동양과의 교역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황금에만 집념하면 밀러의 시구 그대로 '가난'해져 '불화'를 낳게 된다. 그것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을 경염(競艶)시켜 그로 해서 트로이전이 일어나게 한것이 '황금의 사과'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트로이군과 그리스군의 운명을 저울질했다는 저울이 '황금저울'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탐욕과 개인소유욕을 죄악시한 이상사회에서는 금이나 은같은 귀금속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금은 변기나 노예의 쇠사슬 재료로 사용될 뿐이며, 금반지·금목걸이·금귀걸이도 죄수들이 죄받는 표지로만 쓰인다고 했다.

시중 금값이 1돈에 20만원을 넘어서면서 아기 돌반지 풍속도 달라졌다고 한다. 보통 1돈을 선물했지만 금값이 고가를 유지하면서 1g짜리 돌반지가 시중에 선을 보였는데, 날개 돋힌듯 팔린다는 것. 하긴 요즘 도둑들은 도둑질을 해도 현금과 황금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니 이러다가는 18세기 미국에서 불었던 골드러시가 세계적으로 또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최영장군의 말씀은 아예 잊혀질 것인가.

/무등일보 주필  김 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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