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자녀 결혼
지도층 자녀 결혼
  • 전주일보
  • 승인 2011.05.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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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결혼식에는 부모를 위한 식순이 따로 없고 부모 자리가 별도로 마련되지도 않는다. 초대객도 신랑·신부 친구를 중심으로 보통 100명을 넘지 않는다. 일본에도 영국에도 독일에도 한국처럼 1천장, 2천장씩 청첩장을 보내는 결혼식은 없다.

몇년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선 결혼식 하객 수와 축의금, 화환 수, 잔치의 호사스러움이 가족의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여겨진다. 결혼식 때의 축의금 봉투가 때로 뇌물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고 썼다.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청첩을 돌리니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에 따라 축의금 액수가 오르내린다. 결혼식이 신랑·신부가 주인공이 아니라, 혼주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나 가세(家勢)를 과시하려는 부모들이 주인공이다.

몇년 전 한 장관 딸 결혼식엔 1천여명이 찾아와 장관과 악수하려고 기다리는 줄이 100m를 넘었고 축의금 접수대가 각계 인사들로 미어터졌다. 반면 모 장관의 딸 결혼식은 수십년 공직 생활을 같이한 동료나 친구들도 대부분 모르고 지나갔다. 양가에서 50명씩만 초대했다고 한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을 빼고는 친분이 있는 사람 가운데서도 딸을 직접 아는 사람만 초청했다.

최근 들어 정치인 자녀들의 ‘조용한 결혼’이 하나의 풍조로 자리잡아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난 달 16일 한나라당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첫째 딸을 결혼시키면서 주변에 전혀 알리지 않았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지난 달 23일 둘째 딸의 결혼식을 극비리에 치러 ‘스텔스식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나돌았다.

또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지난 7일 서울에서 가족·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첫째 딸 결혼식을 치른데 이어,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지난 1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가족·친지와 일부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둘째 딸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같은 결혼식 얘기가 위로 옆으로 아래로 번져 가면서 훈훈한 화제를 만들고 사회 전체의 돈 결혼, 허례 결혼, 사치 결혼 풍조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국민들의 삶에 직접 보탬이 되는 생활 개혁도 없을 것이다.

공직자와 정치인, 대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 등 사회 지도층이 자녀 결혼 때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화환과 축의금도 받지 않는 '3무(無) 결혼식'에 솔선수범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무등일보 윤종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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