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良心)
양심(良心)
  • 김규원
  • 승인 2023.06.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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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섭/수필가
문광섭/수필가

()문학을 공부하러 다니는 효자동 소재 홈플러스 개골도서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소변기 위에 선반처럼 생긴 시멘트 대()에 놓인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보았다. 그때가 낮 12시 경이었으니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보았을 터인데, 그대로 있는 게 의아했다. 이 전에도 10원짜리 동전 두 개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나 얼마 전에 사라졌다.

그 건 그럴 수도 있다. 오늘의 현실이 10원 정도는 쉽사리 탐내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10원짜리 동전 가지고선 사탕 한 개도 사 먹을 수 없다. 하지만 100원짜리 동전은 사정이 다르지 싶었다. 추측하건대 화장실을 관리하는 분이 주워서 올려놓았을 거라고 여겨졌다. 한데, 왜 오늘은 선 듯 포켓에 주어 넣지 못하고 망설이는가? 그렇게 생각되자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며칠 전의 일 때문이다.

 

꽃밭정이복지관 수업에 가려고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한 참 걷다가 길에 반짝거리는 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100원짜리 동전이었다. 서슴없이 주워서 포켓에 넣으며 횡재했다고 생각하는데,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여자분이 있어 약간 머쓱했다. 그러나 뭘 집었는지 잘 모를 거라고 내 멋대로 치부하며 지나쳤다. ‘이건 내 돈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갈 길을 재촉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반대였다. 이건 횡재도 아니고, 손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전율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얼굴을 떠올려봤다. 도서관을 일 년 넘게 다녔어도 자세히 보지 않아서 알 수도 없고, 독실한 신앙인이 아닐까 여겨졌다. 며칠 전과 오늘 간에 내 처신의 이중성에 갈등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미간 언저리에 100원짜리 동전이 어른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은행 창구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함에 든 1,000원짜리 지폐와 동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길가에서 주운 100원은 횡재라고 생각해 거침없이 포켓에 집어넣었고, 지금은 손대면 안 된다고 여기는 그 판단이 바로 내 양심을 속인 것 같아 꺼림직했다. 혹자는 뭐 그런 사소한 것에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이중성 처사에서 일어난 꺼림직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횡재했다며 주웠던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은행 창구의 이웃돕기 성금 함에다 넣어버려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농협은행으로 들어갔다. 한데, 여기서도 창구 직원의 눈치를 살피게 돼 또 한 번 갈등을 겪었다. ‘하고 성금 함에 떨어지는 금속성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번 일처럼 나도 모르게 이중성에 빠지는 유사한 행위가 많이 있지 싶다. 앞으로 처신을 잘해야겠다면서 은행 문을 나섰다.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걷는데, 이상스레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뭔가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사실은 어젯밤에 읽었던 글귀가 가슴을 후볐다. 미국의 어느 기자가 한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며 쓴 기사를 보았다. 내용 가운데 한국에 가보면 핸드폰이나 가방쯤은 탁자에 놓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실이나 볼일을 보러 다니는 걸 주시해야 한다. LA 폭동 때도 물건을 가져가며 계산대에 물건값을 놓고 나간 사람은 바로 한국인이라고 했던 글을 떠올렸다. 갑자기 내가 진정 양심을 제대로 지니고 있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갈라 치며 나를 다그쳤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명색이 신앙인이라고 자처해오면서 저지른 수많은 잘못 가운데 양심을 판 일도 있지 싶어서다. 물론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고백하고 은사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일 가지고 수다를 떨기보다는 앞으로 남이 알든 모르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없도록 처신하는 데 힘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일이나 큰 것을 두고서는 판단이 엄격해지는데, 작은 것이나 작은 일은 가볍게 생각하기가 쉽다. 남이 보지 않아도 양심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소중히 깨닫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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