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악동(惡童)의 참회록
그해 여름 악동(惡童)의 참회록
  • 김규원
  • 승인 2022.07.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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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어제가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였고 모레가 중복(中伏)이다. 재택근무하는 날이어서 일찍 일이 끝난 어스름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삼천 천변길을 달렸다. 이런 날이면 뭔가에 홀린 듯 물가를 찾아간다. 삼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앞에 앉았다. 가로등 불빛에 돌 사이를 빠져 지나가는 물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나는 17세 소년이 되어 전주천 맑은 물에서 친구들과 낄낄거리는 악동으로 변해 있다.

  가정에 목욕시설이나 샤워 장치가 거의 없던 그 시절, 여름밤이면 남녀노소가 모두 전주천으로 목욕하러 갔다. 특히 전주천 근처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남천교 부근 목욕 터를 찾아갔다. 시야가 가려진 남천교 아래는 당연히 여자들이 차지했고 남자들은 그 위쪽에 모여들었다. 자연히 남녀 무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유지되었다. 밤이어도 거리가 가까우면 인근 불빛에 희미하게나마 벗은 몸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어쩌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반사되어 벗은 몸이 슬쩍슬쩍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16~7세 호기심 많던 시절, 밤이면 으레 더위를 구실로 몸이 식을 때까지 전주천에 들어가 살았다. 그렇게 먼발치서 애간장이 녹는 구경을 하던 어느 몹시 더운 날에 사건이 터졌다. 남천교 밑 여자 목욕 터에 사람이 몰려 점점 우리 쪽으로 범위가 넓혀지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내려가서 여자들 목욕 터 가까이 가보자고 했다. 다들 낄낄거리기는 했지만 나서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수건을 얼른 머리에 쓰면서 여자처럼 보이지 않느냐며 걱정 말라고 친구들을 유혹했다. 그때 한 친구가 자원해 나섰다. 내가 먼저 재빨리 잠수해 들어가 여자들 근처에 접근해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앉아 신호를 보냈다. 그 친구가 내려와 내 옆에 머리만 내밀고 앉았다. 가슴이 없으니 목 언저리까지만 내놓고 여자들과 거리를 두고 등을 돌려 앉았다. 지척에서 여자들이 시시덕거리며 몸을 씻는 걸 흘끔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둘이서 옷을 벗고 물로 들어오다가 저쪽에 사람이 적네, 저리 가자두 여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져 2~3미터 거리에 왔을 때 헤드라이트 빛이 휘익 비추고 지나갔다. 아뿔싸! 등하굣길에 자주 만나는 J여고 학생들이다. 우리를 여자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대로 걸어왔다. 앞에 오는 글래머 체격의 K가 작은 그릇에 옷가지를 담아 옆구리에 끼고 큰 가슴을 내밀고 걸어왔다. 처음으로 여체를 정면으로 보면서 숨이 막힐듯한 충격이 다가왔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달아났다. 나도 얼른 일어서서 옷을 감춰둔 곳으로 튀어 달렸다. 뒤에서는 여학생들과 다른 여자들의 욕설과 고함이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우리는 무사히 옷을 찾아 입고 남천교 다리 위에서 한숨을 돌렸다. 요즘이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여 잡혀가기라도 할 터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소년들의 장난으로 치부되어 웃고 지나가는 일이었다.

  그 뒤 등하굣길에 K를 볼 수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슬금슬금 피했다. 나를 보아도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범인 인 줄 모르는 듯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몇 번이나 자책하며 흘끔거리는 짓도 그만두었다. 세월이 흘러 어떤 공식 행사장에 취재하러 갔다가 그녀를 보았지만, 내가 피했다. 어릴 적에 숱한 악동 짓을 저질렀지만, 이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날 나무랐던 회초리였다. 늙어서야 드러낸 악동의 참회는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바람에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주천은 내 어장(漁場)이었고 수영으로 건강을 선물한 생명의 터였다. 겨울이면 썰매장이었고 싸전다리 밑에 게 발이 설치되면 꼭두새벽에 기어가서 구럭에 든 참게를 훔쳐 와 맛있는 게탕을 먹게 해준 은혜의 놀이터였다.

  글래머 여학생 K는 선배의 부인이 되었다. 나와 함께 물에 들어갔던 친구는 일찍 저세상으로 떠났다. 6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냇물을 보면 가끔 그때 튀어 달아나며 들었던 욕설과 고함이 들리는 듯싶다. 세월에 닳고 바랜 그 오랜 상념들, 지금은 가고 없는 이들, 그리고 한벽당 아래 물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째질 듯 높은 소리와 함께 풍덩거리며 뛰어들던 아이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들리는 듯, 보이는 듯 아련하다.

  그 시절의 상념에서 깨어난 눈앞에는 내가 머지않아 건너야 할 피안을 향한 징검다리가 가로등 불빛을 머금고 휘우듬하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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