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 김규원
  • 승인 2022.03.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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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기 규 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요즘 최고의 화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윤석열 당선인의 말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하기로는 어떤 장소에서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거나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느낌은 선입견에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아 냉기가 감도는 집에 들어가면 쭈뼛한 느낌이 드는 일도 건물이 주는 선입견으로 감각세포가 긴장해 있기 때문일 듯하다. 아무튼 어떤 공간이 그 안에 들어선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에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다. 더구나 그 말이 향후 5년 동안 이 나라 행정부의 수반이 될 사람의 생각이라니 답답하다.

특별히 와닿는 명언도 아니고 곱씹으며 월요일 아침을 우울하게 하려는 생각도 아니다. 다만, 그 말이 당선인의 생각이라니 걱정이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지의 인식을 지닌 사람이 국가를 대표하고 국방 최고 명령권자로 5년간 일하면서 과연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다.

한겨레 신문은 그가 24일 약식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여론이 집무실 이전을 반대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그거는 뭐, 지금 여론조사를 해서 몇 대 몇이라고 하는 거는 의미가 없고. 국민들께서 이미 정치적인, 역사적인 결론은 내리신 거라고 저는 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선거에서 당선했으므로 모든 결정을 독단으로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미디어 토마토가 지난 18-20일 전국 남녀 1,018명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33.1%, 반대 58.1%라는 결과를 두고 의미가 없다라는 반응인 셈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상 뒤에는 윤 당선인의 필체로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그 커다란 글씨의 약속은 장식용인가?

지난날 이명박이 당선 후에 미국에 당선 인사차 가면서 비행기에서 공약 사항을 두고 질문하자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냐?”라며 웃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지키지 않을 약속을 마구 늘어놓은 그는 임기 내내 4대강을 파헤쳐 보를 만들고 물을 가두어 우리 산천을 망쳐놓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윤 당선인이 취임하여 사면해주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이 키워준 후보라며 표를 호소하던 윤 당선인이 국민 여론에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사안도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유추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당선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산불에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진 강원 경북의 산불 피해민 대책을 궁리하는 등 국민을 살피는 일이다.

당선하자 바로 집무실부터 챙기는 그를 두고 실망한 이들이 많은 듯하다. 처음으로 보수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친구는 이재명의 욕설을 듣고 화가 나서 찜찜한 기분으로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는데 이번 하는 짓에 곧바로 후회했다.”라고 겸연쩍어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라도 잘해야 할 터인데 어쩐지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건물에 기어이 집무실을 만들려는 그의 집착에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우려하는 시각과 반대 의사를 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를 적극적으로 돕던 보수 언론들도 이 일에는 재고를 권한다. 윤 당선자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그의 말에 모두 의아했다. 일단 경내에 들어가면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단정적인 판단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다. 그동안 여러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떠나지 못했다. 청와대를 옮기는 일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소요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집무실보다 다급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추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나라 재정은 코로나 사태를 넘어가면서 상당히 어렵다. 윤 후보가 약속한 50조 추경예산도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그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재정경제부가 난색을 하는 상황이다. 집무실보다 민생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윤 후보는 선거 내내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용산으로 변경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면 비용이 훨씬 적게 들 수 있는 일인데 국방부 건물을 지목하여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방부에 있는 합참 등 여러 지휘부가 이전해야 하고 중요 장비와 시설이 이동하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이 드는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잃으면서도 왜 용산을 고집하는지 여러 말들이 있지만, 본인 아니면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같은 당내 이재오 전 의원의 말처럼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바로 풍수설과 연관 지어 보면 답이 나온다.

대선 직후에 캐나다 ‘National Post’가 이번 대선이 2016년 미국의 대선과 비슷하다며 대한민국이 K-Trump를 선택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아울러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Twitter에는 16,000건의 캐나다 이민 관련 트윗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민할 처지도 못 되는 필자로서는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약속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이 현상이 제발 더는 번지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할 뿐이다. 자꾸만 이처럼 엉뚱한 일이 터져 나오지 않고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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