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이발관
송해 이발관
  • 전주일보
  • 승인 2019.04.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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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좋은 의미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지 못한 의미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누가 좋지 못한 의미로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겠는가? KBS 일요일의 프로그램 중 전국노래자랑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당연히 송해 선생이다. 송해 선생은 50여 년간 각 지방을 순화하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여 그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진행 솜씨가 매끄러우면서도 남녀노소 어느 연령층이나 잘 어울려 대화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기에 장수 진행자로 이어져 오고 있지 않나 싶다.

송해 선생은 진행 솜씨뿐만 아니라 노래도 곧잘 불러 일요일의 남자. 라는 노래를 취입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가 하면 구수한 흘러간 옛 노래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올드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씨 등이 다 저세상으로 갔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 집안의 재종제 딸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스케줄이 끝날 무렵에 아들이 살그머니 제안을 해왔다. 마침 서울에 올라왔으니 3.1 만세운동의 중심이었던 탑골공원에 가보자는 것이다. 철없는 아들이라 생각했는데 민족의 역사 현장을 찾아보자는 제안이 퍽 반가웠다. 탑골공원은 일제의 국권 강탈에 항의하여 분연히 일어섰던 3.1독립만세 운동 때에 손병희 등 33인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의 자랑거리 중 한 곳이다.

공원을 둘러보다가 공원의 옆 동네인 낙원동에는 탑골공원처럼 유명한 명소가 또 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송해 이발관이라 했다. 처음 들을 때는 송해 선생이 운영하는 이발관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고 송해 선생이 자주 들러 이발하는 곳이라 한다. 탑골공원에 모이는 노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이발관이라고 했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호기심이 불쏘시개가 되어 이발관으로 찾아 들어갔다. 쿰쿰하고 오래된 이발소 냄새가 훅! 밀려왔다. 모두 수십 년은 족히 넘었을 추레한 실내장식품이 세월을 떠받치고 있었다. 거기에 희미한 눈빛의 노인들이 여러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기고 있다. 이발사들 역시 늙수그레하다. 이발소와 손님과 이발사가 제대로 어울려 세월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그림 속의 한 구성원이 되어보기 위해 기다리다가 차례가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역시나 노 이발사가 가위를 들었다. 이발하는 솜씨가 매우 섬세하다. 자르고 다듬고 빗질한 후에는 다시 자르고 다듬고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가위질 소리가 부드럽고 살갑다. 바로 이게 이발하는 맛이려니 싶게 정성껏 머리를 다듬는다. 6~70년대에 다니던 이발소에서 추억의 이발을 한 셈이다.

그간 다른 이발관에서 이발하던 때가 떠올랐다. 내 머리 자르는 시간은 5분을 거의 넘지 않는다. 머리숱이 몇 올 안 되는지라 한번 자르고, 두어 번 다듬고 빗질하고 나면 의자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이발은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고 손질하는지 오히려 내가 지루할 정도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점점 더 젊어갔다. 노 이발사의 솜씨에 경의를 표했다. 이렇게 성심성의껏 머리를 깎고 다듬으며 손질을 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치우는 방법이다. 한 세대 앞의 구식 청소기가 쉰 소리를 내며 한 올의 머리카락까지 빨아들였다. 두상은 물론 목, 그리고 상의에 묻은 머리카락까지 깔끔하게 흡입해 버렸다. 대단히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구닥다리 청소기를 머리카락 제거에 이용할 줄이야.

정말 놀라운 것은 단돈 4,000원에 불과한 저렴한 이발료이다. 보통 전주에서도 저렴하다고 해야 10,000원정도 받고 있는데 인건비와 물가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서울에서 이런 요금을 받다니. 아마 탑골공원에 나오는 노인들을 위해 노인 이발사들이 봉사하듯 이발소를 운영하다 보니 값이 저렴하고, 저렴하니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이발소가 되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이발소가 한두 곳이 아니고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발 4,000, 염색 5,000원이라니.

아마도 송해 선생도 옛날 추억의 이발이 그리워 낙원동 이발관들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아울러 그가 이 동네에 다니면서 거리가 유명해지고 노인들이 취업하고 찾아오고 하는 상생의 타운이 되었을 거라는 짐작도 해본다. ‘송해거리라고 이름을 얻은 낙원동 골목은 지금 노인들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부모세대의 추억을 체험하며 저렴하고 정이 넘치는 거리의 맛에 다시 찾는 곳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송해 선생은 이 오래된 동네 낙원동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자주 들려서 이발하고 음식도 사 먹으면서 거리에 특색을 입히고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을 것이다. 92살의 그가 이런 아름다운 생각을 지니고 사는데 나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만큼 살려면 20년이 남았다. 지금부터 뭔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차근차근 시작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발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서녘으로 지는 석양빛이 높다란 빌딩 숲 사이를 지나 포근히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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