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하는 데이트 폭력, 근본대책은?
만연하는 데이트 폭력, 근본대책은?
  • 전주일보
  • 승인 2024.05.1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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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명문대 의대생이 자기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명문대학에 다니는 수재형 인물이 애인이 헤어지자는 말에 살해를 결심하고 결행했다는 점에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6일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 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최 모 씨(25)를 긴급 체포했다. 최 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자신의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최 씨가 경기도 화성시 동탄동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미리 흉기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최 씨 변호인도 계획범죄라는 점을 인정했다고 한다. 최 씨는 대입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이 사건이 더욱 관심을 받았다.

우리 사회 현상에서 이별 통보에 연인을 살해했다는 뉴스는 전혀 새롭거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남편이나 애인 등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은 집계된 숫자만 138건이다.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3,939명에 이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199,823명에서 202212,828명으로 3년 새 30.6% 증가했다. 관련 신고는 202049,225건에서 202157,305, 20227790건을 기록하다 202377,150건을 기록해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언론 보도 사건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사흘에 여성 한 명이 가까운 남성에 의해 살해됐다. 자녀나 부모 등 주변인 피해자 수를 포함하면 최소 568명이다.

그런데 데이트 폭력으로 구속된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피의자 13,939명 중 2.22% 수준인 310명에 불과했다. 데이트 폭력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도 접근 금지 조치 등을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남녀 간의 사사로운 감정변화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김레아(26)가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어머니까지 중상을 입힌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교제 관계에서 살인으로 이어진 위험성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데이트 폭력을 신고한 연인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5월 김 모 씨(33)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상가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을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한 전 연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연인이니 연인이었던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다반사처럼 일어나는 사회다.

2020년에는 데이트폭력 예방교육과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규정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오는 2921대 국회가 임기를 마침에 따라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폭력과 달리 교제 폭력은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라 신고하기 어렵고 사적으로 합의하면 된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 재범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한다. 또 여성들은 사건이 드러나 개인적인 흠결로 남을까 저어하는 문제도 있어서 흐지부지되기도 한다.

 

사랑한다던 감정이 금세 분노로 표출되는 이런 심리와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이라고 제시하는 사례들을 보면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찾는다. 부모의 무관심에서 자란 어린이의 가치관이나 열등감이 연인의 변심을 계기로 촉발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살인 등 강력범죄가 불우한 환경에서 많이 발생하던 시대를 지나 골고루 사는 환경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추세다. 외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분노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필자가 나름으로 파악한 데이트 폭력은 의외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의 과도한 보호 아래 뭐든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던 아이가 성장하여 맞닥뜨린 사회는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은 환경이다.

최근에 크게 증가한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충동 살인 등 현상이 모두 영유아기와 소년기를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되었는데, 세상에 나오니 안되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최고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는데 세상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데서 좌절과 분노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모가 이건 안 되고, 이런 일은 남에게 폐가 된다는 걸 일러주지 않고 오냐!, 네가 원하면 뭐든지 해주마를 거듭하며 키운 후유증이다.

귀한 자식에 매 한 번 더 든다.’라던 옛 훈육 지침은 그저 옛이야기로 사라졌다. 공공장소에서 마구 떠드는 아이를 타인이 나무라면 부모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귀한 자식이라며 대든다. 그런 교육 아래서 아이가 바로 자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자라서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최고의 의과대학 학생이 되었는데,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이별을 통보하니 꼭지가 돌아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여자는 그의 멋대로 생각과 행동이 싫었을 듯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지만 유대인들처럼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꾸짖고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라 곳곳에 병이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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