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 한 잎이 모여 한 나무가 된다”
“한 잎 한 잎이 모여 한 나무가 된다”
  • 전주일보
  • 승인 2024.04.15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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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59

 

 

지난겨울, 냉혈한이 산다는 나라의 악마가 오더니

호숫가 버드나무 머리칼을 죄다 뽑아 버렸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리에서도 한 움큼씩 방관도 쥐어뜯겨졌다

올 것이 오고야 마는 올 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버드나무 가지마다

연둣빛 머리카락들이 돋아나 민머리를 채웠다

 

한 나무가 내지르는 머리카락들의 함성은

한 머리에 돋아나는 나뭇잎들의 합창이었음으로

 

졸시민의 -머리카락 숫자 헤아리기전문

한 사람의 머리카락은 몇 개나 될까? 별 것을 다 궁금해 한다고 지청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탈모가 너무 심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소중해 그 숫자를 헤아려 봄직하다. 실제로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루에 50모에서 100모 정도가 빠지고, 머리카락 수명이 2년에서 7년은 간다고 한다. 이렇게 없어지고 새로 자라는 모발이 약 25천모에서 4만모 정도라고 하니, 머리카락이 끊임없이 나고 자라며 빠지는 것은 당연한 모양이다.

봄이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마다 새잎이 돋아난다. 사람들은 날씨가 변하는 것을 일기예보로만 파악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필자의 경우도 그렇다. 마른 나뭇가지에 연둣빛이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 봄이 저렇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구나!” 새삼스럽게 감탄하기 일쑤다. 사물이 변화되는 모습을 자연은 그렇게 일깨우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연의 무상함이 무상無常이 아니라, 무상無想이란 생각을 한다.

자연조차도 영원불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無常]보다는, 그 자연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발상을 불러일으키는 사유의 생명력[無想]에 더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들이 시간이란 열차에 몸을 싣고, 타성이란 관성에 젖어 있는 우리의 의식에 돌파구를 내곤 한다.

그런 중에 다음 두 가지 발상에 크게 공감하였다. 하나는 한 나무에 해마다 돋아나는 나뭇잎들이 몇 개나 될까, 자문한 작가[생물학자]가 있다. 그러더니 그는 자기 자신의 머리카락 숫자만큼 될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Hope Jahren랩 걸) 매우 기발한 발상이다. 누가 있어 한 나무에 돋아났다, 벌레에게 먹히고, 바람에 날아가며, 시들어 떨어지는 나뭇잎의 개수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이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실제 나뭇잎 하나하나의 개수가 아니라, 나무가 보여주는 무한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그럴 때 호프 자런이 제시한 정답은 물리적인 숫자로만 나무[생명]을 보려 하지 말고, 당신의 머리를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 책의 부제]하라는 은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은행에서 지폐를 헤아리듯이 정확한 숫자만 헤아리려 하지 말고, 무한 반복하면서도 조금도 지치거나 늙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식물[나무,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라는 비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매우 상쾌한 조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발상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연의 무상성無想性에서 떨쳐 일어나, 인간의 유한성을 실감하게 하는 무상성無想性에 공감하며, 내 생각의 편협함을 자책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시인에게서 발견한다. 한 여류 시인은 도시에서 스스로 물러나 호숫가 시골마을에 낮고 빈약한 둥지를 틀었다. 그가 사는 곳, 호숫가에는 느티나무들이 병풍처럼 바람막이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 여류 시인은 뜨거운 여름 볕을 그 느티나무 그늘에서 피하기도 했고, 무너지듯 흩날리는 낙엽을 자신의 시심으로 맞이하기도 했을 터이다. 겨울이라고 그냥 보냈을 리 없다. 나목을 배경으로 오가는 철새들의 가늠자로 느티나무를 잊지 않았을 터이다. 이 모두 그녀의 시재였으며, 시상의 마중물이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봄이 왔다. 하루가 다르게 느티나무의 색깔이 변하더니, 어느새 나뭇잎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월이 오자 하나둘 헤아리던 느티나무 잎들이 무슨 반란이라도 하듯, 일제히 피어나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온통 호수를 덮어버렸다. 그럴 때 여류 시인은 그 느티나무의 나뭇잎을 헤아리는 묘법을 시심으로 그려냈다.

느티 무게를 셈하느라 즐겁게 압사하는/ 한낮/ 연두의 무게는/ 연두 곱하기 연두 곱하기 연두 곱하기/ 연두……(송명숙청호지 옆 느티길이 연두로 막혔다전체6연 중 끝 연) 연두 곱하기 연두가 연두의 무게란다. 이렇게 셈하면 느티나무에 새롭게 피어나는 모든 나뭇잎의 무게를 저울처럼 달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나뭇잎의 개수를 헤아릴 수도 있을 터이다. 이 시인 역시 호프 자런과 마찬가지로 나뭇잎의 개수가 아니라, 느티나무가 연둣빛으로 보여주는, 무한 생명력에 감출 수 없는 놀라움을 이렇게 발설하고 말았다.

시심은 늘 그런 셈법을 선호한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생명력]을 보는 눈, 주판으로 셈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 화폐 계산기로는 산출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움을 이렇게 신박한 상상력으로 무상성을 무참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금년 봄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소위 민주주의를 몸소 실행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런 소음에 귀를 막고, 그런 악다구니에 눈을 가리려 해도 전 방위적으로 몰려드는 선거공해는 막심했다. 그럴지라도 내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모두를 소음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흙탕물의 흐름을 맑게 할 수 있는 한 줄기 청수淸水를 가려내려는 용심을 가져본다. 혼란스러운 악다구니 속에서 그래도 조금은 나와 우리의 미래를 배려하는 소리를 골라들으려 발심을 내본다. 이런 각자의 노력들이 드디어 모였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막중한 결실이다. 버드나무 이파리 한 잎 한 잎이 모여 거대한 나무숲을 이루듯이, 느티에 피어나는 연둣빛 이파리들이 한 잎 한 잎 모여 압사해도 즐거울한낮을 밝히듯이, 한 표 한 표가 모여 거대한 민의民意를 피워낸다는 것! 생각할수록 거룩하고 장엄한 새봄의 교향악이 아닐 수 없다! 한 잎 한 잎이 모여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푸른 별을 이루듯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한 표 한 표가 모여 희망이 가득한, 위대한 민주사회의 숲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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