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대의 봄
추천대의 봄
  • 전주일보
  • 승인 2024.04.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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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문광섭/수필가
문광섭/수필가

봄이 시작한다는 입춘 날엔 낮 기온이 반짝 높았어도 아침저녁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며 일교차가 커서 옷차림이 힘들었다. 봄 마중을 가고 싶었으나 대륙에서 날아오는 미세 먼지 경보 발령과 복지관에서 공부하는 일과가 놓아주질 않아 마땅한 때가 쉬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3주 가까이 지내다가 주일미사를 마치고 우연이 천변길로 나오게 됐다. 나와 보니, 날씨도 좋고 시간도 있어서 추천대(楸川臺)까지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날 유혹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봄이라지만 봄같지않는 날씨 때문에 농사일도 제대로 맞출 수 없다며 야단들이다. 작년엔 냉해 바람에 사과 농사를 망쳐 사과 가격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금값이라는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바다에선 오징어 보기도 어렵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 기후 탓이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얼마나 좋은지는 외국을 나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여름이라고 해서 똑같은 여름이 아니다.

 

천변 하상도로엔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행락객이나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모두 봄 경치를 구경 나왔지 싶다. 추천대교 밑을 지나니 황방산이 낮으막하니 다가선다. 앞자락 언덕바지에 추천대가 있고 그 아래에 보()가 있다. 대단위 하천공사를 하는지 먼발치에서도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때다. 비둘기 떼가 날아올라 하늘을 선회하더니 양지바른 둔덕에 활강해서는 봄을 쫓기 시작했다. 문득 중앙성당 앞 도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에 날아들어 먹이를 쫓던 비둘기가 생각났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넓은 전주천이 있는 데도 그곳에 머물고 사는 까닭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저 사람 사는 방식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물이 많고 수심이 깊은 곳에 이르렀다. 엄마 물오리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데리고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느라 바쁘게 움직이며 사방을 경계했다. 병아리 크기의 새끼 오리들도 엄마가 시키는 데로 열심히 따라 했다. 저렇게 가정교육부터 철저히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수심이 낮은 곳에 서다. 백로 한 마리가 고개를 빼 들고 먹잇감을 노리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반면에 왜가리 한 마리는 고개를 처박은 채 참선에 들어가 있다. 무아지경이다. 동정을 엿보고 노리는데도 그걸 모르는 쪽에선 슬픈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백로와 왜가리 행동이 극과 극을 이루는가? 이것도 조화(調和)인가?

 

() 강의 시간에 들었던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이 떠올랐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서로 상대적이라고 비유한 말인데,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하지 싶었다. 그 순간, 긴 겨울을 나느라고 지겨워했던 까치 한 쌍이 냇가를 줄달음치며 사랑을 속삭이는지 깍깍하고 귓전을 울리는 바람에 묵상에서 깨어났다. 이제는 중장비 엔진 소리가 고막을 울리며 시선을 끌어당겼다. 상당히 큰 하천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종전의 보()보다 1m 이상 높이고, 물고기가 오를 수 있도록 어도(魚道)를 양쪽에 두 개나 만들고 있었다. 임시로 가둔 봇물이 마치 호수처럼 느꼈다. 가장자리에 늘어선 갈대숲이 마치 귀인이라도 기다린 듯 반가운 얼굴로 반겨주었다.

 

문득 파스칼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가 뇌리에 스쳤다. 오늘 봄나들이의 백미는 갈대에서 찾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운동기구 옆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여유롭게 삶의 의미도 정리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안도감에서 뿌듯한 자부심이 일었다. 우선 대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긴 세월과 이를 극복하고 일어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나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꽃바람이 인다. 솜털을 날려 보낸 갈대의 실가지들이 바람에 바르르 떨며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는 봄이 있기에 추운 겨울도 거뜬히 이겨냈다며 하나로 뭉친다. 새봄을 맞으려고 비워냈기에 선율이 곱지 싶다. 갈대 군상들은 비워야 새로움을 채울 수 있기에 내려놓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함께 입을 모은다. 한데 나는 아직도 내려놓는 것에 인색하고, 왜 비우는 것을 주저하는지 모르겠다.

 

(2024.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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