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단풍잎에 어린 가을 정취”
“은행나무 단풍잎에 어린 가을 정취”
  • 김규원
  • 승인 2023.11.20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상수상詩想隨想 -40

 

 

학교 울타리 구석

은행나무에 가을기침이 깊어가는 날

푸른 낙엽이 무더기로 떨어져 뒹군다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황금전대를 풀어

싸구려 낭만을 불러주기도 하고

호사를 누려도 좋다며 쿠션 좋은

양털침대, 더블침대를 펼쳐놓곤 하더니

올해는

어쩐 일인지, 은행이 쪽박을 찼는지

아니면 못 볼 것을 많이도 봤다는 것인지

저리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지러진다

하긴,

또래끼리 주먹자랑이 전관예우로 확전되는

출세 전쟁을

긴 그림자를 짓밟아야 고슴도치 새끼 잘 크는

동물의 왕국을

신물 나게 보아온 터라

황금전대는 꽁꽁 묶어놓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저리 자지러지는지도

 

-졸시푸른 단풍전문

숲이 이상하다. 11월 중순을 지나 하순으로 접어들었는데도 숲은 제대로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 없나보다. 며칠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1118일에는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을 숲은 도무지 자신의 색깔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누구는 이런 현상이 이상 기후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찌 이상 기후가 자연 탓으로만 볼 수 있을까?

 

주말을 이용해서 산행을 했다. ‘전주소리문화의전당주차장에 주차하고 장덕사가 있는 쪽으로 좌회전했다. 독립유공자 추모의 집을 거쳐 단풍나무공원을 지나 오송제에 이르는 길은 봄의 신록부터 가을 단풍까지 그 경관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많은 시민이 애용하는 숲길이다. 그런데 이곳의 단풍나무들도 단풍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단풍은 고사하고 파란 잎 그대로 이거나, 반쯤 물들다 만 모습인 채 낙엽으로 뒹굴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전주관통로은행나무들이 가을이면 은행을 떨어뜨려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거나, 가로수 은행나무 잎을 제때 청소하지 않는다며, 낙엽을 쓸어내라는 민원이 잦았다고 한다. 이에 행정 책임자는 청소 용역들에게 성화를 대고, 청소 용역들은 쓸고 돌아서면 또 다시 떨어지는 낙엽을 어떻게 다 쓸어내느냐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이때 신문사 문화부장으로 있던 한 기자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고 한다. “시몬/ 그대는 좋은가/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로 시작하는 구르몽[Réy de Gourmont. 1858~1915]의 시낙엽을 인용하면서, “가을 한철 도심 포도에서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 낭만을 좀 즐기면 안 되겠는가? 왜 굳이 낙엽을 쓸어내느라 생 고생 하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도심에서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쓸어내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이 칼럼이 나간 뒤 가을 한 달 동안 관통로의 은행나무 낙엽을 쓸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낙엽 밟는 낭만을 위하여 청소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던 기자나, 그 칼럼을 읽고 낭만적 감성을 발휘했던 행정 책임자나, 이 시대에는 매우 희소하지만, 낭만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던 시인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 기자가 바로 김남곤 시인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한 학교를 찾았다. 학교에는 큰 나무들이 많다. 느티나무며, 벚나무는 물론 은행나무도 학교 정원이나 울타리마다 고목들로 들어서 있다. 요즈음 학교 은행나무가 수상하다. 가을이 되면 가장 먼저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노랑 편지를 휘날리며, 추남추녀秋南秋女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의 첨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책갈피에 노랑 은행잎을 끼워 두었다가, 손 편지를 쓸 때면 이 은행잎을 붙여 넣곤 하며 낭만을 선물하던 은행나무요 그 잎들이었다.

 

그런데 올해 은행나무는 그렇지 않다. 노랗게 물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직 파란 색깔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퍼렇게 질린 모습으로 낙엽이 되어 나뒹구는 모습이 낯설다. 운동장이며 통학로를 잔뜩 덮은 은행나무 낙엽들을 보며 가을의 낭만을 즐기던 일은 이제 옛일이 된 듯하다.

 

이상 기후가 자연 탓만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의 영향 때문이라면, 학교의 은행나무 잎들이 제대로 단풍들 수 없는 것도 결국은 학교사회가 지니고 있는 환경 때문은 아닌지, 적이 두려운 생각이 든다.

 

말은 말과 연합하면서 뜻을 생산하고 삶을 이루어 간다. 그런 말 중에서 가장 조합이 어색한 말이 학교폭력이란 말이다. 어떻게 배움의 전당인 학교, 아직 폭력은 고사하고 미움과 투쟁보다는 우애와 협동을 배워야 할 학생들의 집 학교, ‘폭력이란 살벌한 말이 결합하여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또래들의 놀이가 심해져 다툼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의 학교폭력은 그런 낭만적 싸움의 차원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또래끼리 우발적으로 벌이는 닭싸움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괴롭혀 먹이로 삼는 야생-밀림의 싸움을 닮았다. 이때 강자는 물론 폭력 학생이 아니라, 학생의 폭력을 무마할 수 있는 부모의 권력이다. 이런 부모의 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권력지상주의가 결합하여 탄생시킨 사생아다.

 

은행나무는 철 따라 푸른 잎을 노랗게 물들인다. 학생 역시 철 따라 물드는 은행나무를 배워야 한다. 그것을 잊은 사람이나 사회는 결국 이상한 나라의 돌연변이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