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양속(?), 그 변화를 어떻게 따라잡을까?
미풍양속(?), 그 변화를 어떻게 따라잡을까?
  • 김규원
  • 승인 2023.01.16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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油然 이동희 시인이
찾아가는 좋은 삶 -92

         

             詩想 隨想

 

 

 

미풍양속, 글자 그대로 보면 매우 바람직한 사람살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속과 선량한 습속이 현대사회에서는 애물단지가 된듯하여 딱하다. 그 풍속을 따르자니 시대정신에 한참 뒤지는 듯하고, 따르지 않자니 뭔가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것 같아 켕기는 바가 없지 않다. 이래도 저래도 곤란한 것이 미풍양속이다

 

관혼상제가 대표적인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관례冠禮는 성인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을 지탱하려 애를 쓰는 측면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의 의식이나 생활에서는 그리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야말로 흐지부지 사라진 형국이다.

 

혼례婚禮는 그야말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초례청을 차리고 전통방식의 혼례를 전통문화관 등에서 행하기도 하지만 일부에 그치고 만다. 그저 친족끼리 모여서 약속하고 관청에 혼인신고만으로도 충분하며, 그렇게 실천하려는 젊은이도 있긴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축의금 들인 것이 얼만데(?)’ 하는 타산성이 있어 북새통 혼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례喪禮도 피할 수 없어서 그렇지 옛날과는 천양지차 풍속이 변형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코로나19의 내습으로 전통적 의미의 상례는 많이 희석되었다. 아마도 이마저도 그저 존비속끼리의 행사로 그치고 말 것으로 보인다. 제례祭禮는 존속 여부가 가장 첨예하게 남아 있는 풍속이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제사를 멀리하는 사람도 있고, 제사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 권리의 신장과 평등주의 사상이 팽배하면서 제사가 점점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래저래 미풍양속이 주체적이고 자기중심주의적 사고를 중시하는 현대-현대인들에게는 행복한 삶에 걸림돌로 여기는 모양이다.

 

까치는 울지 않았다

앞머리를 긁어도

아비는 빨리 오지 않았다

세 살 다섯 살 형제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할 때마다

아비 귀환을 점치는

점술사였고 박수무당이었다

누군가 발길질하듯 팽개치듯

차례를 제사를 어느 귀신이 잡수느냐

핀잔을 줄 때마다, 나는

독축 없는 청주를 따르며

아비를 추월하며 여기까지 왔다

오기 어렵다는 막바지古來稀

설날까지 왔다 -<필자의 시설날전문>

 

시대 풍조가 그럴지라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관례가 성가신 풍속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개체로서 성인이 되었다고 가름함으로써, 확고한 자아 정체성을 심어주는 통과 의례로 중히 여기는 사람-가정도 있다. 혼례가 그저 혼인신고만 해도 그만이겠지만, 둘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새로운 인류의 버팀목이 된다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뿐 아니다. 장례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 한 주체를 떠나보냄으로써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시대와 자기 삶의 됨됨이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대한 의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제례도 그렇다. 필자의 경우 철이 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제례에 참석하였다. 평생을 기제사는 물론 설날과 추석 차례도 빠짐없이 참례하였다. 어린 아이가 무슨 제례의 의미를 알아서 그랬겠는가. 유학자였고 한학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주관하시는 집안 분위기도 있었지만, 또 다른 사정도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필자는 겨우 다섯 살, 아우는 세 살이었다. 그때 필자의 선친은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한강 다리를 일찍 끊는 바람에 귀향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른들이 모이면 귀가하지 않는 집안의 장남을 기다리는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는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어머니와 할머니의 간절한 기다림이 나와 내 아우에게 쏠리곤 하였다. 집안에 대소사-명절날이면 어김없이 점을 치듯, 무당에게 한 소리 듣고 싶은 듯, 나와 아우에게 머리를 긁어보라 했다.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언제 오실지 머리를 긁어보라!”는 것이다. 앞머리를 긁으면 아빠가 일찍 돌아오실 것이며, 뒷머리를 긁으면 늦게 돌아오실 것이라는, 기대 반 그리움 반의 정서를 철부지 아이들의 행태에 투영시키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행위가 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아버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판명이 난 셈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어른들의 마음결을 조금은 살필 수 있는 눈치가 발동했는지, 앞머리를 자주 긁어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도 하였으나, 나보다 어렸던 아우는 눈치코치 없이 뒷머리를 자주 긁어 어른들을 낙담케 하였다고 후일담을 듣기도 하였다.

 

어찌했든 설날이며 차례 상을 물리고 세배를 받으시며 어른들의 안타까움을 풀어드릴 수 있는 데 일조했던 경험이 작동했는지,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동안 나는 평안함을 느꼈다.

기제사에서 축문을 읽어 제사를 받으시는 어른들을 추모하는 의식은 뜻 깊은 울림을 준다. “유세차維歲次……시작하는 축문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듣기만 해서는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필자는 한글-구어체로 바꾸어서 제사 때마다 읽곤 했다.

 

언제부턴가 독축을 맡아 놓고 하는 우리 집안 제관이 되었지만, 축문을 들은 후손들이 그 뜻을 명확히 알아들었다고 반응할 때마다 일말의 보람을 느끼곤 한다.

미풍양속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사람다움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현실적 편리만을 추구하려는 세태가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그럴지라도 시대와 각 가정의 형편에 맞게 미풍양속을 조화롭게 따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보람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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