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 김규원
  • 승인 2019.08.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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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 광 섭/수필가
문 광 섭/수필가

죽마고우들과 1년 만의 재회 행사가 끝나고서도 10여 명은 다하지 못한 정을 주고받는 회포를 푸느라 자정을 넘겨서야 각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곤히 자는 친구들이 깰까 봐 바닷게처럼 살금살금 깨금발을 딛고서 엉금엉금 방으로 들어갔다. 상현달인 데도 창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 덕분에 누울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찍 들어온 친구들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가늘게 들리는 숨소리, 멀리서 달려온 여독과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 피로에 지쳐 모두 곯아떨어져있었다.

희미하게 달빛이 스미는 창 쪽을 바라보며 누웠다. 늦게까지 마셨는데도 취기가 없고 외려 정신이 말똥하니 총총하기만 했다. 그때, 어디선가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가 귓전을 울리며 잠을 쫓았다. 귀를 쫑긋하니 모으자, 제법 운치 있게 골짜기에 휘돌아 방안까지 들어왔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시골에 살 때 누이가 동이에 물을 담아 와 독아지에 쏟아 붓는 소리였다. 바위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소싯적에 듣던 물레방앗간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때로는 작은 돌을 어루만지며 정답게 조잘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밤 깊어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떨어지고 굽이치며 흐르는 물소리는 오케스트라에서나 느낄 수 있는 하모니 그대로였다.

지금 내가 누워있는 알프스산장 앞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와 어울리려는 듯 아름드리 소나무에서도 이런 저런 화음을 내고 있다. 물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 현악기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찬바람이 높다란 장송(長松) 솔잎 가지를 가르는 소리는 쏴아하며 들리고, 소나무 허리를 감아 도는 소리는 간간이 휙휙하며 쇠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하단을 스치는 소리는 둔탁한 음색으로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오래전, 모악산 연분 암을 오르다 금선암 길 삼거리에서 쉬고 있을 때다.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덕바지에 늘어선 소나무 숲에서 연출해내는 화음이 장관이었다. 소나무 상단의 솔잎을 스치며 내는 휘파람 소리, 숲 사이를 통과하면서 하고 소낙비 쏟아지듯 하는 소리, 소나무 아래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는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아 매료된 적이 있다.

알프스 산장은 운장산(雲長山 1,126m)에서 발원된 물이 운일암반일암계곡을 흘러내려 용담호로 들어가는데, 그 계곡의 경관이 수려한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한밤중인 데다 기압골 영향으로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는 성싶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이 들어서도 저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큰 복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창생들이나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가는귀가 먹었고 보청기를 하고서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없고 정겨운 대화도 어려운 그들에 비하면 이런 야심한 시간에 멋진 자연의 소리를 흠향할 수 있는 나는 퍽 행복한 사람이다. 귀는 잘 들리지 않지만, 체력이 좋아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나가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아직 청력이 좋아 자연의 소리를 맘껏 누리는 사람도 있으니 세상은 그럭저럭 공평한 셈이지 않은가?

문득, ‘물처럼 살라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창 젊은 날이었다. 우리 고장에서 첫 번째 큰 어르신에 선정되신바 있는 작촌(鵲邨) 조병희 선생님을 찾아뵈었더니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귀를 써주셨다. 내가 공직에서 잠시 전출했다가 돌아온 사정을 아시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말라는 의미로 써주신 듯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첫째가 겸손이다.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속성이다. 둘째가 기다림이다.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채울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셋째가 여유이다. 물은 바위를 뚫는 힘을 가졌지만, 유유히 돌아간다. 삶에서도 때로는 비껴가거나 돌아가라는 지혜다. 이 밖에도 많은 함축성 의미가 담겨 있다. 선생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신 뜻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한데, 선생님의 바람과 달리 그렇게 살지 못했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회한이 사무친다. 크게 그르친 것은 신중히 돌아서가라는 지혜를 살리지 못한 채 조급했던 처신이다. 대표적인 것이 IMF 경제위기 때, 형제간의 일에 사려 깊지 못해서 성급하게 정면 돌파한 일이다. 다만, 운명이라 치부하고 인생 부도(人生不渡)의 쓴맛을 보았다. 갖은 고초를 어렵사리 극복해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다.

목이 탈 때야 물의 소중함을 생각하듯이 인생도 어려움을 겪고서야 무엇이 소중하며 값있는 삶인가 깨닫게 된다. 13년 전 심장 수술 후 회복하는 6년 동안 건강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고, 7년 전 동생의 죽음을 통해 형제간의 정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미리 짐작하지 못하고 닥치고 겪고 나서야 세상사를 거니채는 우둔함을 탓한들 무엇하랴.

세상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물질은 넘쳐나지만, 인간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지는 세태가 아쉽다. 다소 불편하고 부족할지라도 정이 있고 사람냄새가 나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듯하다. 밤이 깊으니 바람 소리는 작아졌지만, 물소리는 여전하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돌고 머물다 가는 지혜로, 어떤 것이든 서로가 포용하는 자비(慈悲)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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