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손, 훌륭한 국가
깨끗한 손, 훌륭한 국가
  • 전주일보
  • 승인 2018.10.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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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보수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 '부역(賦役)'의 사전적 풀이다. 왕조시대에는 성곽이나 관아를 짓는 공사를 할 때 백성들을 무보수로 뽑아쓰던 일이 다반사였다. 이를 '부역 징발'이라고 했다.
 
근현대 들어서도 한때 이런 강제 노역이 있었다. 70, 80년대 독재시절에 새마을운동이나 산림녹화 사업 등에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홍수나 산사태 등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민방위 소집을 통해 인력을 확보해 일을 시키곤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뼈아픈 경험 가운데 하나가 일제(日帝) 강제 징용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아시아 각 국에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끼친 일본 정부 혹은 일본군에 의해 조선인들이 강제적으로 징발당해 노역 혹은 군역(軍役)에 처해졌던 흑역사를 말한다.

강제 부역과 달리 일제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발적 부역자들도 적지않다. 친일부역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유감스럽게도 해방된 조국에서 변신을 거듭, 살아남아 대물림하며 오늘날까지 민족정기를 흐리고 있다. '친일청산(親日淸算)'을 하지않은 민족이 겪는 또 다른 쓰라림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짓밟혀 온갖 억압을 받은 프랑스 역시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전후 처벌은 확연히 달랐다. 70년이 휠씬 지난 지금도 나치 전범(戰犯)이나 나치 부역자들을 추적, 발본색원함으로써 나라의 정기를 되 새우고 있을 정도다.

우리에게도 친일부역자,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려고 제헌국회에 설치됐던 특별기구다. 그러나 반민특위 활동을 보장할 특별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미(美) 군정에 의해 인준을 거부당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공작으로 '반민특위'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와해당하고 말았음은 알려진 바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지난 11일부터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이란 이름의 전시회(동구 기록관 3층 전시실)를 열고 있다. 12월 30일까지 계속될 전시회에는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의 반역행위와 나치의 반인도적 범죄 등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소장한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전시회 목적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있다. 권력을 찬탈한 불의의 세력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최악의 학살에도 책임을 지지않고 버젓이 살아 행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처벌은 "깨끗한 손만이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금언에서 비롯된다. 친일·부일 협력자 등 민족반역자는 물론 5·18학살자 처벌도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훌륭한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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