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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을 걸으며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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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2  14: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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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광 섭 /수필가

순백의 면사포를 드리우고 기도하는 듯 청순한 목련이 민낯을 드러낼 즈음이면, 천주교 전례력으로는 사순시기가 된다. 올해는 우수 경칩이 지나고서야 날씨가 풀렸다. 살가운 바람이 포근한 손길로 얼굴을 쓰다듬듯 스쳐갈 때에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전북문학관 담장위로 드러낸 하얀 목련들, 그 천사들 무리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하얀 천사들은 열흘 남짓 나의 애간장을 태우고 가슴을 끓게 하더니만, 이별의 말조차 없이 붉게 얼룩이 지면서 시나브로 떠났다.

내가 다니는 송천성당엔 70세부터 90대까지 남성 신자로 구성하여 신앙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요셉회라는 모임이 있다. 지난 주 회합 때, 원로회원 한 분이 “나이가 들면 이런 저런 사유로 순서 없이 떠나기 마련인데, 언제 한 번 죽음을 준비하는 묵상시간이나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싶다.”고 건의를 했었다. 마침, 아홉 살 손아래 동서가 급서하는 바람에 2주 넘게 가슴앓이를 해오던 터라,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서둘러 회의를 마친 적이 있다.

오늘도 복지관 수필공부를 마치고 가진 회식 자리에서 Y 형이 또 한 번 슬픈 소식을 전했다. 두 달 전에 “김 0 0’씨를 아느냐”고 물으며 건강이 매우 안 좋다고 귀띔해 주었던 이가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나와 고등학교 동기로 같은 직장에서 30년을 함께했던 동료로 오래전에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두 달 사이, 몸이 안 좋다는 소식과 세상을 떴다는 말을 연이어 듣고 보니, 인생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메어왔다.

내 형제도 둘 다 70세도 못 넘고 떠났다. 또한, 30년 넘게 가까이 지내온 친구나 지인 가운데는 40%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의학이 발달하여 100세 운운하지만, 그건 젊은이들의 몫이고 우리또래는 90세도 희망사항이지 싶다. 우리 집 가족력으로 심근경색이 있으나, 나는 다행히 칠십 중반을 넘기며 장수하는 편이다. 그동안 아내의 정성과 도움으로 수술 뒤 합병증과의 싸움에서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 갑작스러운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바심을 하면서도 마음으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2023년 제25회 부안 세계잼버리’의 봉사만은 꼭 마치고 떠났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럼 떠날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재작년 여름이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 K가 갑자기 전주에 내려와 연락을 주었다. 재수술을 앞두고 마음 정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재수술이 실패하면 가망도 없고, 연명치료는 받고 싶지 않아서, 그간의 흔적과 인연들을 한 번 돌아보고 싶으니 동행하자 했다. 3일 동안 전주시내 곳곳을 돌아보고 올라갔다. 어려운 고비는 넘긴 모양인지 잘 버티고 있다는 카톡이 간간이 오고 있다.

다른 친구 하나는 떠나기 20여 일 전, 나에게 약술 한 잔을 건네며 기도를 부탁하고 작별을 고했다.

“형, 그동안 고마웠어! 후회 없어. 이만큼 산 것도 행복해!”

쇠잔해진 모습이지만, 목소리만큼은 또렷하니 들렸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예감이라도 드는지 초연한 자세로 차분하게 말했다. 흐느끼는 가족을 외려 달래는 여유로움까지 보였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도 각기 틀리며, 운명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기준을 제시하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다만, 2017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남자 평균수명이 79세라는 점과 자기 건강을 고려하여 기대수명을 판단하면 되지 싶다. 나는 평균수명이 매년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도 고려하고, 12년 전 심장을 대수술했던 점도 감안하여 85세를 기대수명으로 판단해 보았다. 그렇다면 10년도 못 남은 셈이다. 내게 남은 시간에 대략 다섯 가지 정도를 목표를 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노력을 하고 있다.

첫 번째가 조상님의 묘소를 한 곳으로 이장하는 일인데, 작년 윤 오월에 마친바 있다. 두 번째는 ‘스카우트 전북연맹 60년사’를 발간하는 일이다. 편찬위원장의 중책을 맞고 있는데, 아직도 50% 선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다.

세 번째는 증조부님부터 시작해 증손자까지 이어지는 현대판 우리 집 족보와 가톨릭 계보를 제작하는 일인데, 재작년에 시작했다가 난관에 부딪쳐 중단됐다. 내년쯤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네 번째는 수필집 두 권과 자서전 한 권을 내고 싶다. 작년에 첫수필집을 내려고 그동안 발표한 100여 편의 원고를 퇴고하던 중, 건강검진의 후유증으로 그마저 중단한 상태다. 또다시 시작하려던 참에 동서의 급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손도 못 대고 있다. 그밖에도 2023년 부안 세계잼버리 봉사를 마치고 나서, 아내의 팔순잔치나 챙겨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해야 할 일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는 건 일을 다 마치면 혹시 저 세상에서 오랄까 두려워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앞도 알 수 없고, 하느님의 뜻은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이지 않은가? 다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소망하는 일을 하다보면 때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문광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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