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다슬기 맛
섬진강 다슬기 맛
  • 전주일보
  • 승인 2018.04.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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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영숙 / 수필가

“임실에서 다슬기탕 맛있게 하는 식당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임실에서는 어디를 가든 다슬기탕은 맛있어요.” “어디 한 곳만 콕 집어 알려주기 곤란하다면 그냥 영숙 씨가 자주 가는 집으로 알려줘 봐요.”

이럴 때 참 난감하다. 가끔 내가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라고 소개해준 사람들로부터 별로 맛이 없었다는 뒷말을 듣기도 하고 나 또한, 지인의 말만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쳐서 실망했던 경험이 종종 있었기에 딱히 어느 집을 소개하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사실 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임실에서는 어느 식당으로 가나 다슬기탕은 다 맛있다. 그러니 섣불리 어디 한 곳만 소개하기 난감하지 않겠는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자주 가는 청웅면 소재지에 있는 '청웅분식'이라는 식당을 소개했다.

흔히 맛집이라고 하면 간판에서부터 무슨, 무슨 ‘원조 맛집’이니, ‘어디 어디 방송에 소개된 집’이라느니 간판에서부터 홍보문구가 즐비한 것이 대부분인데 '청웅분식'은 다르다. 밖에서 보면 그냥 허름한 작은 시골식당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 3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언젠가 진한 국물 맛의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별거 없어요, 단지 대수리를 확독에 갈아서 국물 내는 것 밖에요.”

다만 수더분한 사장님의 대답 속에서 맛의 진실을 가늠할 뿐이다. 어쨌든 그 집 다슬기탕은 첫맛은 시원하고 뒷맛은 쌉쌀하고 구수하다. 반찬도 맛깔스럽다. 물론 계절별로 조금은 다르지만 두어 시간을 조려낸 고추 조림과 깻잎 조림은 그 맛이 일품이다.

대체로 임실의 다슬기탕은 시원하고 칼칼한 맛과 부추와 수제비를 넣은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이 집도 그렇다. 다슬기의 살은 탱탱하면서 꼬들꼬들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호박과 부추의 초록빛이 그대로 투영되어 푸른빛 국물은 찰랑대는 섬진강물을 닮았다. 탕에서 수제비를 다 건져 먹은 후에는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이 맛 또한 별미다.

임실의 다슬기는 센 물살에 껍질이 닳아 겉모양은 매끈하고 맑고 차가운 강물 덕분에 속살이 탱탱하다. 특히 임실지역 즉 섬진강 상류에서 자라는 다슬기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푸른빛을 많이 띠는데, 이는 헤모글로빈을 생성시키고 간 기능 회복에도 좋아 불규칙한 식사로 위장이 안 좋거나 입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여름철에 더위를 피할 겸 다슬기 잡는 유리판 기구를 챙겨 섬진강 맑은 물에 들어앉아 다슬기를 잡아, 즉석에서 애호박과 풋고추를 썰어 넣고 수제비를 뚝뚝 떼어 넣어 끓여 먹던 다슬기탕의 맛이 그리울 때면, 나는 청웅 다슬기탕 집을 찾는다. 다슬기탕의 시원함 속에는 그런 추억의 맛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욱 맛이 있는지 모른다.

요즘은 맛집의 홍수 시대다. 어지간히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은 다 맛집이라 하고 맛집 치고 방송에 한두 번 소개한 안 된 집이 드물다. 특히 인터넷 파워블로거가 소개하는 맛집이 대세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 먹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맛집은 홍수를 이루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 맛집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진정한 맛집의 기준은 무엇일까? 맛?, 친절서비스?, 위생상태?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다 갖춰져야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음식은 누구랑 먹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먹었는지 그 상황에 따라 그 맛이 다르지 않던가? 학창시절 친구들과 먹었던 길거리 떡볶이 를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때만큼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다.

어떤 날은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께서 부쳐주시는 빈대떡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최고급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보다 맛있었고, 여행 중 어느 허름한 기사식당에서 먹었던 그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며 식당주인이 추천해주시던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이렇듯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고 특히 내 입맛에 맞는다면 나만의 맛집이 아닐까?

청웅분식의 다슬기탕이 그러하다. 그냥 밖에서 보면 평범하다 못해 허름한 분식집이지만, 한번 먹어보면 또 가고 싶은 집, 삼십 분 이상을 기다려도 영 지루하지 않았던 다슬기탕 집이다. 두어 시간 후 묻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맛있는 곳을 소개해줘서 고맙고 덕분에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다. 반찬도 정갈하고 다슬기탕은 시원하고 칼칼해서 해장국으로 안성맞춤이었다고,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꼭 다시 와야겠다며 매우 만족해했다.

맛집이란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그 입소문을 믿고 찾아가 맛있게 먹거나 입맛에 안 맞아 실망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만의 몫이 아닐까. 맛이란 미각과 식탁에 함께 앉은 사람과 내 허기와 그리움과 추억이 모두 개입한 종합적인 감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영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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