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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롯불로 추억을 소환하다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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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4: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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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수필가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길을 따라 집을 나섰다. 아직 날이 다 밝기 전이지만 꽤 많은 사람이 사선대 주변을 달리고, 걷고, 경보까지 다양한 행태로 건강을 지키려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나는 단조롭게 아스팔트 위에서 뜀박질하는 게 싫어서 산행을 시작했다.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위는 매섭다. 손끝이 아려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반복한다. 양쪽 주머니에 핫 팩을 넣어온 것이 요긴하게 쓰이는 시간이다. 20분 정도 오르니 성미산 정상이다.

아침 해가 부끄러운 듯 홍조 띠며 천천히 솟아올라 작은 마을을 금빛으로 도금하여 보여준다. 그 빛을 헤치며 자동차들이 멀리 보이는 전주 남원 간 도로 위를 질주한다. 저마다 사연 싣고 달리는 자동차의 꽁무니로 눈이 부신 햇살이 따라붙듯 나도 햇살 따라 조심스럽게 하산 길에 오른다.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발밑에서 눈이 아우성친다.

그런데 내려오던 중 산자락 지인의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고등어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정겨운 냄새다.

“벌써 산에 갔다 오는 겨? 출출할 텐데, 아침 먹고 갈쳐?.” 지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화로 옆에 앉았다. 화롯불이 감싸는 온기도 온기려니와 화롯불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자반고등어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화롯불에 구운 자반고등어는 밥도둑이다. 프라이팬에 구워낸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나는 체면도 무시하고 밥 한 공기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어치웠다. 고등어를 화롯불에 구워 먹던 시절이 언제였더라. 오늘 이 맛이 딱 어릴 적 어머니가 구워주시던 그 맛인걸. 화롯불 앞에 앉아 부젓가락으로 불을 헤집으니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알불 하나가 되살아나 내 흐릿한 기억 속의 불을 밝혔다.

장에 가신 아버지가 거나하게 막걸리 한 잔 걸치시고 어둑어둑 해 질 무렵 기분 좋게 사 들고 오시던 것이 고등어였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화롯불 석쇠 위에 노릇노릇 고등어를 구우셨고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게 밥 먹는 오 남매의 입만 보고 있어도 배부르다 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화롯불의 따스함은 긴 세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수단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우리 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나름대로 아련한 추억거리가 꽤 많다. 알불을 화로에 담아 방안에 들이면 가끔은 일산화탄소로 인하여 불멀미가 났다. 알불이라면 갓 때고 난 나무나 장작이 숯 상태로 화기를 발하는 정말 알짜배기로 사위지 않은 불을 말한다. 심할 때는 구토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동치미 국물에 숯을 띄워주셨고 시원한 국물 한 사발을 천천히 다 마실 때쯤이면 거짓말처럼 멀미는 사라지곤 했다.

어느 해는 뒷동산에서 따온 산딸기를 혼자만 먹겠다고 장난치다가 동생을 다치게도 한 적도 있다. 내가 딸기바구니를 들고 도망 다니면 동생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런 동생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마당으로, 부엌으로, 뒤란으로 뛰어다니다가 화로 위에 보글보글 끓고 있던 된장찌개에 막냇동생이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동생은 화상을 크게 입고 치료받느라 오래도록 고생했다. 비록 상처가 아물기는 했지만, 엉덩이와 다리에는 흉터가 선명했다. 한동안 나는 늘 동생한테 미안했다.

이렇듯 화로가 좋은 추억만 주는 건 아니었지만, 온 가족을 자연스럽게 옹기종기 화롯가로 모이게 하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소리도 밤새 들어줬다. 주전부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만큼 감자며 고구마를 묻어 구워 먹는 간식 창고가 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밤을 칼집 없이 묻었다가 밤이 미사일처럼 펑펑 터지는 바람에 방안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아침 일찍 닭이 알을 낳으면 아버지는 늘 날달걀을 드셨고 우리는 다 드시고 난 달걀껍데기에 불린 쌀 한 숟가락 넣어 화롯불에 올려서 맛있는 달걀껍데기 밥을 해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런 우리를 위해 아버지는 달걀을 다 드시지 않고 조금씩 흰자를 남겨주곤 하셨다.

화롯불은 다양한 용도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팔방미인이었다. 어느 날은 보글보글 찌개가 끓었고, 어느 날은 고등어를 노릇노릇 구워내기도 했으니 요즘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 구실도 한 셈이다. 화로에 삼발이를 적절히 올려놓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온종일 따뜻하게 마실 수 있었으니, 보온병 역할도 한몫했다.

어쨌거나 찬바람이 문풍지를 뒤흔드는 호된 추위에도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솔솔 날만큼 지독한 웃풍 속에서도 화로에 둘러앉아 온기를 나눴던 시절, 화로는 옛이야기나 가족 간 또는 이웃 간의 소통 수단이었다.

고등어 한 마리가 데려간 나의 어린 시절의 구구절절한 기억이 고등어보다 더 맛깔스러운 추억을 소환했다. 오늘은 화롯불 잉걸이 사그라져 차츰 재가 될 때까지 하얀 눈 위로 쏟아지던 겨울밤의 별을 헤아리며 들었던 옛날 옛적의 이야기, 그리고 화롯불에 대한 추억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이제는 추억의 언저리에 놓여있는 화로, 추억만으로도 겨울이 따뜻해지는 날, 그리움 하나가 가슴에 발화되어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추억을 안고 집에 오는 길은 여전히 따스했다.

김영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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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나인
제대로 추억을 소환하셨군요.
(2018-11-01 13: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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