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민정이에요!”
“오빠, 민정이에요!”
  • 이옥수
  • 승인 2009.06.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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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관련된 재미있는 예술 작품으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연극이 있는데,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오빠 철수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紅桃)는 오빠 친구 광호를 만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데, 시어머니의 멸시와 시누이 등의 음모로 시집에서 쫓겨나고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된다.

절망의 끝에 몰린 홍도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남편을 가로채려는 약혼녀에게 우발적으로 칼을 휘두르게 되고, 그리하여 순사가 된 오빠에게 끌려가는데….

이 작품이 1936년에 초연됐을 때 관객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한 많은 여자의 비참한 일생’ 이야기는 당대의 중요 관객인 화류계 여성들의 처지를 대변하면서 그들의 심금을 울렸고, 일제강점기에 처한 우리 민족의 애환도 담아내며, 그 시대의 계층적 갈등을 다루는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유념할 것은 여기에서 오빠는 분명 ‘친오빠’라는 점이다.

‘기생오라비’라는 말이 있다. ‘오라버니’는 오빠의 높임말이고, ‘오라비’는 오라버니의 낮춤말이니, 그럼 ‘기생오라비’는 오빠를 높이는 것인지 낮추는 것인지 좀 알쏭달쏭하다. 이 말이 ‘기생의 기둥서방’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높임말이 이상하게 된 까닭을 알 것도 같다.

그 시절 ‘기생오라비’ 즉 ‘기생의 기둥서방’들은 기생에 붙어사는 건달 혹은 조직폭력배들이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요즘 여자들이 ‘오빠’라 부르고 있다. 연인을 ‘오빠’라 부르는, 우리말 족보에도 없는 오늘의 풍습이 ‘기생오라비’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1925년 11월에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실린 뒤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던 동요 ‘오빠생각’의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일지도 모를 그 오빠는 여태 오지 않고 이상한 오빠들만 등장하는 세태다.

이 오빠들이 “오빠, 민정이에요!”라는 거짓 문자 메시지에 낚여 한해에 17억 원을 물렸다는 지난주의 TV에 떠들어댔던 뉴스다. 못된 것. 오빠를 위해 일생을 바친 ‘홍도’는 어디 가고 오늘날 어찌‘ 민정’이가 나타나 오빠들을 괴롭힌단 말인가!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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