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꽃 필 때
사과, 꽃 필 때
  • 전주일보
  • 승인 2024.04.16 16: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사과 없다∼.” 한때 유행했던 ’영구 없다‘ 코미디 대사도 아니다. 지난 선거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 과일 매대에서 사과가 거의 사라졌다. “32과짜리 제가 13만 원에 배달하고 왔어요. 장수사과 10kg 한 상자에.” “매일 드시는 분들 있잖아요.“ 주말 산행 때 동네 가게를 찾았을 때다. 4개짜리 한 봉지에 1만5천 원에 샀다. 말 그대로 금(金)사과 다.

”아삭아삭하니 단맛 신맛 다 나지요. 장수사과가 이리 맛있어요.“ ”원래 장수는 없었는디, 저기 흉상 송재득 선생이 경상도서 와서, 여가 고랭지라 사과를 심어 성공했지요.“ ”80년대 후반일 겁니다.“ 장수사과영농조합 마당에는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기록상으로는 1908년에 장수 계남면에서 국광 재배가 시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규모 사과 재배는 1987년부터다.

지난해 전국 사과 생산량은 39만 4천여톤. 2022년 61만 5천여톤에 비해 35%나 줄었다. 문제의 뿌리는 기후위기다. 장수 사과 생산량은 전국 대비 5%. 980여 농가에 대략 2만 톤 정도다. 기후변화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34종의 사과 품종을 개발했다. 지자체와 함께 지역에 맞는 품종으로 전문 생산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장수에는 추석 사과인 ’홍로‘ 생산을 권유하고 있다. 농가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꿀벌이 윙윙거리고 다녀야 올가을에 좋은 사과를 딸 수 있는데, 벌도 없고 벌통 구하기도 쉽지 않네요.“ 장계면 지인의 한탄이다. 이상 기후 영향으로 올봄도 사과나무 꽃 피는 시기가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빨라졌다는 이야기다. 벌써 사과꽃이 피었다.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 꽃샘추위로 저온 피해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가 그랬다. 그래서 농가들은 ”사과꽃 늦게 피었으면∼“ 했지만, 올해도 폈다.

사과는 우리나라 대표 과일로 과일 생산량의 다수를 차지한다. 추석 ’홍로‘를 시작으로 다음 해 햇사과가 나올 때까지 만생종인 후지(부사, 富士)가 대체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사과는 대부분이 부사다. 사과는 수입이 아직 어렵다. 병충해 유입 때문이다. 공항에서 입국 때 과일 소지를 막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값이 폭등하자 ”일본에서 수입하겠다.“는 말을 했다 거둬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통 사람들도 아는데, 대통령이 몰라 냉소당한 경우다.

이래저래 사과와 인연이 많은 대통령이다. 대선 후보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 끝에 사과를 했지만, 그날 밤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파문이 일었다. 뒤늦은 사과로 ”국민을 조롱했다.“는 질타를 들었다. 먹는 사과는 좋아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별로 인가보다.
’이태원 참사‘ ’명품백 수수‘ ’양평고속도 변경‘ ’주가조작‘ ’해병대 채상병 사망‘ 건 등에 대해서도 그저 말 없음이다.

지역에서도 전주시장 마찬가지다. 전주KCC 농구단의 부산 이전으로 항의하던 시민들에게 부시장을 내세워 어설프게 ”마지막까지 노력했노라∼“ 변명했다. 그리고 ’전주천 버드나무 대학살‘로 불리는 참사에도, 담당 국장으로 하여금 ”수재 예방∼“이라는 확신에 찬 발언으로 시민들 가슴에 큰 멍을 남겼다. 전주국제영화제 사전 설명회 참석과 달리 두 건 다, 전주시장은 부하들 뒤로 꼭꼭 숨었다.

지난 총선에 ’875원 대파‘에 밀려 ’사과‘가 덜 언급되었지만, 시민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먹는 사과‘ 값 폭등에 분개했지만, 이전에 국민 아픔에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없다는 것이다. 사과(沙果, Apple)와 이 사과(謝過, Apology)는 다르다. 한문과 영어를 모르는 시민들도 누구나 다 안다. 이른바 윗분들만 모르쇠다.

시민단체 경실련은 지난 1일 ’최악의 공공사업 1위‘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도시전문가 1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파행 충격은 실로 컸다. 전북도지사는 예산기간 내내 국회 상주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전북도는 2024년 예산에서 전국 유일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불명예를 받아들여야 했다. 

한편 정부는 1500억원 상당의 재정 투입을 했으나 사과·배 등 과일 물가에 흔들리는 민심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던 셈인지. 뒤늦게 대통령은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으로 투입한다.“고 밝혔다. 총선과 더불어 사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 위기 시대다. 밀려오는 파고에 개개인이 대응할 방법은 그리 마땅치 않다. 각자도생도 힘들다. 바로 이때 조직이나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총선에서는 ’사과‘라는 말 대신에 ’대파‘로 재미를 많이 본 정당도 있다. 서로 사과를 요구하고, 주장하기에는 어색한 속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후 위기 시대, 기후 의제가 사라진 선거였다. 사과, 꽃 필 때처럼 사과는 타이밍이다. 그리고 진정성이다. 떠밀린 사과는 위선일 뿐이다. 사과는 시간과 인내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은성 2024-04-17 18: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