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먹는다 엄처시하에서 나는 헛수저질로 밥알을 식탁 아래로 떨어뜨렸다밥을 먹다말고 걸레로 밥알을 훔쳐내는 아내 왈벌써 수전증이 생겼느냐며 쫑코를 준다농사꾼 자식이 밥을 고따우로 먹으면 죄 받는다며밥알 하나가 피땀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뜬다아까 마트에 갔다가 올라오는데 누가 엘리베이터에 방귀를 뀌고 갔는지 냄새가 지독해서 죽을 뻔 했단다 혹시 당신이 뀐 것 아니냐며 틀림없이 범인은 당신이란다저것은 분명 못 말리는 아내의 시시콜콜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강렬하고 복잡한 감정 중 하나로, 두 사람

여기는 남원 인월(引月) 인월(引月)은 달을 끌어올린다는 말이다. 인월 사람들은 달을 끌어올려 지리산 자락에 걸쳐놓고 사는 사람들인가? 그렇다. 인월 사람들은 달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선이다. 그것을 고려말에 이성계 장군이 가르쳐 주었다.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이 함양에서 관군을 제압하고 지리산을 피해 인월 황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성계 장군은 고려군을 이끌고 운봉을 거쳐 황산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해가 지자 컴컴해졌다. 그때 이성계는 하늘에 빌었다. “이 왜군이 달아나기 전에

담쟁이덩굴의 진실 芝堂 유혜경 울타리 기어올라 '담쟝'이 되었다지덩굴손 흡반으로 햇빛을 사냥할 뿐돌 사이 공기뿌리로 파고들 수 있으랴 사계절 멋진 배경 사진관 예술인데건물밖 외벽타기 빨판이 풍화하랴,소나무 관다발껍질 파고들 순 없잖아 생태계 모르는 척 보듬어 오르는데지주에 한땀한땀 바느질 섬세하고찬바람 흰눈 내릴 제 돋을새김 곱구나

명절은 “이름 名, 마디 節”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이다. 그 뜻은 “전통적으로 그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설날과 한가윗날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절이다. 한식(음력 4월5일)과 단오(음력 5월5일)를 넣어서 한국의 4대 명절이라고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그래도 설날과 한가위는 온 국민, 온 나라가 명절다움으로 들썩이곤 하지만, 한식과 단오에는 그런 날이 있는가 보다 하거나, 아니면 그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식당에서 백반 한 상을 시켜놓고 밥이 나오는 사이 벽에 걸린 TV를 보았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 하나가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아이는 양을 만져보고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호랑이를 향해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얼굴을 만들어 보입니다 카메라맨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따라다니며 찍어댑니다 아이의 재롱과 애교가 화면을 채우고 화면 밖까지 넘칩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 잘 만나 별에 별짓을 다 하는 이 시간어떤 아이들은 허기를 움켜쥐고 한 그릇의 밥을 생각합니다 배곯는 아이들아너희는 절대 TV를 보지마라 배부르기 전에는더

봉숭아꽃이 저 혼자 만발했다. 지난해만 해도 계절마다 온갖 꽃들이 피었던 꽃밭이다. 봄에 피었던 수선화도, 여름에 피었던 나리꽃도 누군가 뿌리째 뽑아 가서 속상했는데 다시 가보니 여기저기 봉숭아꽃만 철없이 피어 있다. 씨 뿌리지 않았어도, 돌봐주지 않았어도 저 혼자 나고, 저 혼자 자라고, 저 혼자 피어서 빈 마당을 지키고 있다. 바로 내가 근무했던 약국 꽃밭 소식이다.약사님이 돌아가시고 약국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비워둔 상태다 보니 꽃밭은 잡초가 다 점령해 버렸다. 김여화 前 임실문협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침묵의 피라미드 유응교 이집트 카이로의 모래 위 수평선에오늘도 말이 없는 침묵의 건축이여!거대한 석조의 무덤 영혼의 안식처여! 권력의 상징이자 하나의 천문대로이십 년을 쉬지 않고 오리온 별자리에한 치의 오차도 없이 쌓아올린 돌무덤! 지금도 알 수 없는 신비한 구조물로경탄과 놀라움을 불러온 유적이여!삶이란 죽음이란 무언가 피라미드 말이 없네

뉴스 보기가 겁난다. 혹여 식사 중에 뉴스를 보다가 밥숟가락을 멈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보통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왕조시대 같으면 “짐朕이 부덕한 소치”라며, 임금이 거적을 깔고 엎드려 고천문告天文이라도 낭독하며 태평성대를 간구해야 할 지경이다.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 밤길을 다녀도 안심할 수 있는 도시, 치안이 최고로 안전하게 확립된 선진국, 경로사상이 생활화된 이상적인 사회라며 쏟아지던 외국의 찬사가 어제 같은데, 영화 ‘범죄의 도시’ 시리즈를 방

새가 허공에 한 획을 그을 때 두 발을 감추는 까닭은 더 빠르게 더 멀리 날기 위해서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을 때 새는 나뭇잎 같은 날개를 접는다. 나무가 한쪽 어깨를 내주면 깃털처럼 가볍게 제 몸무게를 줄인다. 새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면 새의 눈물을 본 일이 없는 인간들은 새가 운다고 한다. 새가 죽지에 부리를 파묻고 있는 것은 결코 잠이 든 것이 아니라 허공을 염탐하는 것이다. 지상을 박차고 치사 솟아오를 때 새는 새다 지붕 없는 새장이 바람에 흔들리면 새는 탈출하기 위해 온몸이 빳빳한 주검이 된다. 지금은 새장의 새가 빠

치성(熾盛)하던 여름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는 처서(處暑)도 지나고 낼모레면 백로(白露)다. 올해 더위는 지독하게도 덥고 끈적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버텨도 태양이 이울어 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나 싶다. 나 또한 그 섭리에 따라 오고 갈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지구에 어쩌다 생명으로 유형화하여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게 경이로울 따름이다. 계절이니 시간이니 하는 이름조차 조심스러운 이 말년의 삶에 조금씩 늘어가는 변수(變數)를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 무사했음을 고맙게 안다. 지난해 80을 앞두고 신체적 변

나의 고향 맛집 잔치 대아수목원은 보물찾기 맛집대둔산은 등산 맛집 구이 저수지는 숨바꼭질 맛집소양 대승 한지 마을은 공예 맛집 맛집이 많고 많아도 정말 많은 나의 고향 승연 어린이의 고향이 완주군요! 선생님도 26년째 완주군 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서 고향 같은 느낌입니다. ‘대아수목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수목로에 있습니다. 희귀 및 특산식물 135종류가 포함되어 총 2,683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습니다.‘대둔산’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에 걸쳐 있으며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립니다. 산세가

민속 널뛰기 심재남오르고 내려서면 또 다른 오름이라하늘을 비상하는 꽃바람 춤을 춘다.우리네 민속의 화합 널뛰기 품 멋이여! 날으는 치맛자락 맞잡아 부여잡고더 높이 올라서면 설 자리 요령심다우리네 떨구는 바람 너와 나가 하나로

요즈음 대국민 서비스 정신이 높아졌는지, 관계 기관에서 보내는 재난문자가 수시로 전화기를 진동시킨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으니 안전 관리에 각별히 힘쓰라는 둥, 폭염이 자심하니 외출을 삼가고 한낮의 활동을 자제하라는 둥, 코로나가 재유행하고 있으니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고 손 씻기를 생활화하라는 둥, 부안 남쪽 4km 지역이 진원지인 진도 3.1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둥,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재난문자만 잘 살펴도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좋은 일이다. 사람은 안팎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은 주체적 자아가 관장하지만,

비밀은 사이에 있다너와 나라는 사이 아니면 우리들이라는 사이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가붉은 혀를 낼름거리며귀가 얇거니 입이 싼 사람들을 찾아간다세치 혀로 퍼 나를수록 다디단 것이 비밀이다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목을 꽉 누르면 슬며시 주저앉기도 하는 비밀은한동안 부풀었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해진다때로는 소리 없이 수그러들기도 하는 비밀은 참았던 눈물처럼 사이에서 한 순간에 깨지기도 한다비밀은 약속을 이름표를 붙여 마음고庫에 넣고 자물통을 채우는 일탐욕이 비밀을 만들고 불륜이 비밀을 낳는다 비밀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처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만 참으면 기록적인 열대야도 물러 가지 싶어서 설렌다. 오늘도 아침부터 푹푹 찌더니만 오후엔 소낙비라도 내릴 양 동쪽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걷기운동을 나갈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남았어도 걱정이 앞섰다. 천둥 번개가 치는 걸 봐서 잠시 내릴 소낙비는 아니고 제법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창밖을 연신 내다보는데도 비는 내리지 않고 어두움만 짙어갔다. 그렇게 30여 분을 끌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앞집 창고의 양철 지붕이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간간이 번개가 번뜩이며 벼락을 치니까 나이가

아이스크림은 종류도 많다요맘때, 돼지바, 폴라포, 체리마루아이스크림은무더운 여름에 먹으면 제일 맛있다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복숭아맛 요맘때, 초코맛 돼지바아이스크림 먹으면 내가 차가워져서아이스크림이 되는 거 같다 여름에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음식은 시원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달콤하면서 시원한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아이스크림입니다. 후인 어린이도 아이스크림을 많이 좋아하는군요.아이스크림은 종류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후인 어린이가 적어놓은 이름을 보니,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감이

곰소항 유혜경 풀치를 좋아하신 할머니 생각나서갈매기 꾹꾹 우는 곰소항 찾아가니비릿한 부두 풍경에 그리움만 더하네 틀니엔 물메기가 효자라 하시더니그리운 그 목소리 어디서 들을까나어물전 빙빙 돌다가 아무것도 못 찾네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거세어도오로지 내편이던 세상의 바람막이오늘밤 파랑 예보에 꿈에라도 오실까

어느 직종이든 책임자 밑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책임자가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수하자는 항상 경계하며 상관의 동태를 의식해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상관과 부하, 일을 주관하는 자와 그 부하라는 수직관계가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조직사회의 특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처럼 그 상관[책임자건, 사장이건, 두목이건, 대빵이건]이 없는 날은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된 날처럼 마음마저 가볍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수하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태업(怠業: 노

산행을 왔다 돌아 갑니다 들고 온 물을 마시고 짊어지고 온 김밥도 과자도 다 먹고 갑니다산벚꽃 꺾어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에 떠나 올 때 손 흔들어 주던 사람 사는 마을로 돌아갑니다 울적한 날에도 소화가 안 되는 날에도산을 찾아 왔습니다한 사람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산의 품에 안겨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한 세상을 살다가 산을 볼 수 없는 날 골짜기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천년 노송 아래 봉긋한 무덤으로 작은 산이 되겠습니다 #산행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행위를 넘어 자연과 교감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종합적인 활동이다. 우리는 보통 산은

줄포만 갯벌을 향해 길을 걸었다. 마치 행군하는 병사들과 흡사하다. 옆구리에 총 대신 어망을 둘러맸다. 어망 없는 이는 작은 양동이를 들기도 했다. 행색은 조금 남루하나, 얼굴에는 결기가 흘렀다. 바닷가에 닿자마자 무작정 갯벌로 뛰어들었다. 사방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농게들이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 농게를 잡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농게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구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갯벌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내내 이어졌다.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다. 잡히는 농게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그러니 농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