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는 번영의 미덕”
“음악이 주는 번영의 미덕”
  • 전주일보
  • 승인 2024.02.0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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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50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이*와 함께

쉼표가 필요한 오솔길에 음표를 심었지

 

언제쯤 그 젖은 싹이 돋아나

빈약한 우리 심장의 고동이 되어 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는 이미 리듬에 젖은 발걸음을 얻었지

 

박수칠 준비를 마친 새움들

나목들 사이마다 화음으로 수를 놓는 산새들

저들이 읽어내는 음표 가득한 오선지 숲길에서

 

비가가 끝나는, 우리 그 멀지 않은

다른 날들에도

오솔길은 푸른 음표들로 넘쳐나겠지

겨울을 읽으려는 텃새들을 위해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인디언 속담>

 

졸시음악선물 -친구와 함께 숲길을 걷다전문

반세기 가깝게 벗하며 지낸 친구와 겨울 숲을 걸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치열했던 현직을 벗어나 이제는 인생 후반부를 더디게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처지다. 지난날의 영광일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없는 세월의 더께를 굳이 벗겨내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금 우리가 처한 좌표를 직시하자고 다짐하는 터수였다. 그러자니 나누는 정보며 말씀의 길들이 한결같이 건강 문제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도 나도 외면할 수 없는,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들에 긴장하는 시간들을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연치가 보내는 신호들은 나보다 먼저 내 몸에 불규칙 화음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그런 신호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노화의 신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주저앉히려 하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호들에 마냥 내 몸을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틈만 나면 몸을 부려 산길을 찾고, 시간의 중동을 분질러 산책을 일삼으며, 삶의 중심점을 내 몸의 부름에 응답하는 시간들로 만들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오가는 말길은 도돌이표처럼 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오늘의 화두에 머물곤 하기 일쑤다.

 

그런 중에도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으면서도 셈해보면 과연 무엇일까, 허퉁할 때도 없지 않았다. 이룬 것, 거둔 것, 찾은 것, 만든 것, 쌓은 것…… 모두가 그저 그렇고 그런 허상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셈해보면 삶을 함께 위로받던 공유의 덕목들이 없지는 않다. 시절에 맞춰 시심을 가늠하는 일도 없지 않았고, 무주 강변에서 찾은 깨돌이라며 건넨 수석에 화답시로 시절 인연을 형상화하기도 하였으며, 톱 악기를 건네받고 우리 삶의 어둔 대목을 음악 감성으로 잘라내자고 권유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시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고, 덜 익은 시상을 모아 시집이랍시고 건네며 시절 인연의 소중함을 기억하려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러던 벗이 지난 산행 뒤에는 자신이 자주 듣는 음악이라며 음반을 내 손에 쥐여준다. 나는 일찍이 음악 감상으로 시간의 받침대를 만들 수 있다며, 수많은 시간을 음악이 주는 감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시절을 보낸 터수였다. 벗 역시 음악을 온몸으로 담아내는 음악 감상 마니아였다. 그런 처지이기에 그가 건넨 음악 선물은 뜻이 깊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CD플레이어에 음악을 건다. 내 귀에도 익숙한 뉴 에이지 음악[new age music], 영화의 주제 음악을 담은 OST[original sound track], 그리고 생활의 BGM[background music]이 될 수 있는 피아노 음악들이 장장 넉 장의 CD에 가득 담겨 있었다. 들을수록 친근하고 정감이 넘치는 음원들이었다. 볼륨을 한껏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면서 음악에 빠져든다. 책을 읽으며, 뭔가 생활의 에피소드들을 챙겨가며, 삶의 전선을 자꾸만 축내려는 시간을 붙잡아두는 심정으로 음악을 동반한다.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현상금을 걸고 친구란 무엇인지 공모했다. 어떤 사람을 친구라고 하는지, 친구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수많은 사람이 응모엽서를 보내왔다. “친구란 기쁨을 곱해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친구란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친구란 많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등 무수한 답변들이 친구를 정의하려 했다. 그중에서 1등은 바로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차지했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다.” 인디언 속담이 뜻하는 정의와 영국에서 1등으로 뽑힌 정의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즐거움보다는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 젊음이 피 끓는 시절보다 인생 노을이 짙어가는 시절을 함께 하는 사람, ‘지금-여기나의 곁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진정한 벗이다. 그러자면 친구의 슬픔을 내 등에 지어야 할 것이며, 사람들이 떠나간 빈 둥지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친구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숲속 오솔길을 걷다 보니 음악은 음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온통 음악 천지였다.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씀의 씨앗들이, 우리가 디디는 오솔길들이, 비둘기들이 짝을 부르는 구애의 소리들이, 참새들이 키 작은 나무 아래에서 종알대는 소리들이, 마른 가지를 흔들며 몸부림하는 바람의 소리들이 모두가 한 편의 교향악이요, 대지의 음악이었다. “낮에는 빛으로, 밤에는 흡수된 빛으로 활동하면서, 천체의 음악은 밤낮으로 울린다.”<아인슈타인>

 

허물어지는 몸의 기울기와 달리 숲은 언제나 생명으로 넘쳐난다. 그 생명의 원동력이 바로 음악이라 한들 누가 있어 아니다 할 것인가! 벗이 선물한 정감 어린 선율이 귓가를 맴도는 중에, 오솔길에서 만난 음악의 정령들이 가세하여 나의 저녁노을을 환하게 비춘다.

 

인생 최고의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어로 쓴 이 말은 행복happiness이나 번영flourishing이라고 번역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번영 쪽에 비중을 두고 싶다. 음반에 담긴 음악이나, 대지가 들려주는 음악을 삶의 활력소로 삼을 수 있다면 분명 번영된 삶이 가능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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