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받침대를 생각하는 순간들”
“시간의 받침대를 생각하는 순간들”
  • 김규원
  • 승인 2024.01.22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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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48

 

 

흐르는 것들은 모두 나를 정화시켜요

 

떠나시려는 어머니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엄마 고맙고 사랑해요 이젠 아프지 마세요

눈 감은 침묵을 타고 두 줄기 강물이 흘렀어요

그 강물말씀 떠올리면 언제나 찬비가 내려요

 

현악4중주단이 서로 다른 소리색으로

나를 대신에 국화*를 함께 울어주었지요

 

이십삼 년 근무한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했어요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둔대요

그럴 거예요 희망은 작은 눈덩이라고 하잖아요

굴릴수록 스스로 자라 눈사람이 된다면서요

 

나를 다독이듯 첼로를 어루만지며 피아노가

거울 속의 거울**을 비춰주었지요

 

*국화: Puccni‘Crisantemi’

**거울 속의 거울: Arvo Part‘Spiegel im Spiegel’

 

-졸시눈물샘 -음악이 머무는 곳전문

끊임없이 흐르며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것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흐르는 시냇물을 그릇에 담아두면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아마 잠시나마 그렇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시냇물과 그릇에 담긴 시냇물은 같지 않다. 그릇에 담긴 물, 흐름을 잃은 물은 더 이상 시냇물이 아니다. 흐르는 시냇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 그러나 그릇에 담긴 물은 마침내 썩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흐름은 생명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아름다운 음악, 좋아하는 명곡을 CD나 녹음기에 담아 둔다. 음악의 기본은 흐름이다. 멜로디와 리듬과 하모니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가며 예측할 수 없는 소리의 향연을 베푼다. CD나 녹음기에 담아 둔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의 형해形骸일 뿐이다. 생명이 없는 몸체일 뿐이다. 음악이 재생기로 작동하여 저만의 흐름을 만들어낼 때, 청각을 끊임없이 울려주는 시간의 파노라마를 펼칠 때 비로소 음악이다. 그렇다면 음악 역시 살아 있는 흐름이요, 생명 작용인 셈이다.

오랜 투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청취자의 사연을 듣는다. 마지막 가시는 길, 더 이상 지상의 말씀을 나눌 수 없어 미약한 숨결만 간신히 토해내는 어머니!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귀에 대고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더 이상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시라고! 눈물이 범벅된 인사를 건넨다. 시간의 말씀을 잃은 어머니는 대답이나 끄덕임 대신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강물처럼 흐르는 어머니의 눈물이 아들의 작별 인사에 대한 응답이리라. 그 침묵을 타고 흐르는 어머니의 눈물은 곧 생명의 시간이다. 어머니가 지녔던 지상의 숨결은 멈췄지만, 어머니가 흘리신 눈물의 강물은 아들의 가슴에서 영원히 흐를 것이다. 생명의 힘이 되어 흐를 것이다.

이런 아들을 위로하느라 푸치니의 현악4중주 국화Crisantemi를 흘려보낸다. 그 흐름에 마음결을 적신 청취자의 눈에서도 강물이 흐른다. ‘, 음악의 흐름을 따라 눈물샘이 솟다니!’ 음악의 흐름은 대체적으로 무거웠으나 현악기의 선율미가 그 무거움을 덜어내면서 잔잔하게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럴수록 눈물은 주체할 수 없게 흐른다. 꼭 음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생명을 멈춘 어머니 임종의 순간에도 흐르는 눈물이 아들의 가슴에 영원한 생명의 힘을 심어준 그 흐름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음악이 머무는 곳은 악기가 아닐 것이다. 세상을 떠난 이의 눈물이 아들의 가슴에 머물러 새로운 생명의 흐름을 이루듯이, 악기를 떠난 소리의 흐름이 사람의 눈물샘에 머물러야 진정한 음악이 아닐지.

23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방송에 공개할 정도로 당찬 의식을 가진 이의 용기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순간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름답다!”?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잠깐이나마 들었던 망령된 생각을 얼른 지우고 다음 말씀에 집중한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둔다며,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여는 사람! 그런 희망이 바로 작은 눈덩이라며 멈추지 말고 눈덩이를 굴려가라고 격려하는 사람! 자꾸만 굴러가다 보면 엄청난 크기의 눈사람이 된다고 확신하는 사람! 삶의 중심축이 무너지는 아픔을 버팅이며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결은 언제나 흐르고 있음을 절감한다.

희망을 살려가는 이에게 주는 위로의 음악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이었다.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첼로의 잔잔한 음향이 영상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무한 연속되는 거울 속의 나를 본다면, 끝없이 무한 반복되는 거울 속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아닐지, 그렇게 나를 세상이라는 거울 세계로 끌고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희망을 새롭게 반추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잔잔한 믿음을 가지게 한다.

그러고 보면 생명 있는 것 치고 흐르지 않는 것은 없다. 아니 생명은 흐름 그 자체다. 그 흐름의 기본은 시간이다. 멈춘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속성은 흐름이다. 잠시도, 단 한 순간도, 찰나의 시간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에 얹혀살아가는 존재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언제나 부르면 오고, 잡으면 잡을 수 있다는 듯이 쉽게 여긴다. 시간만큼 냉정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시간의 횡포를 붙잡아 둘 받침대를 마련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음악이 주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순간, 꺼져가는 생명의 촛불을 가슴에 담아두는 순간, 단 몇 줄의 시를 가곡에 담아 읊조리는 순간, 누군가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고 내 생명의 흐름이 누군가의 흐름에 전이되기를 바라는 순간, 이런 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겨우 잠시 시간의 받침대를 마련할 뿐이다.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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