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이 현실 되는 세상!”
“백일몽이 현실 되는 세상!”
  • 김규원
  • 승인 2023.06.12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상수상詩想隨想 - 21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아니, 깨고 나니 기분이 더러웠지만, 곰곰을 지난 뒤에

반전 점괘에 기대어보려는,

그 기분 나쁜 시도가 기분 나빴다

기분이라

나는 왜 얻어맞은 뒤에야

이른 새벽, 취기에 머리가 아플까

출구조사대로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풀려던, 날들

그 걸레들이 얼마나 말랐을까

빛과 그늘이 다녀간 사이

꿈 깬 현실이 기분 나쁜 백일몽이 되어버린

나날, 그 생중계 화면을 깨뜨리려

오늘도 낮꿈을 꾸듯

낮술이 땡긴다,

기분 나쁜 꿈속의 그 사내처럼

 

-졸시낮술 -내 서정의 기울기 11전문

 

꿈은 꾸려고 한다고 꾸어지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한때는 밤마다 꿈을 꾸어서 잠자리가 편치 않은 나날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잠자리가 편안할까, 제발 밤에 꿈을 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평안한 숙면이야말로 낮의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나의 경우 이렇게 꿈을 꾸는 날들은 비교적 활동이 활발하던 때였던 것 같다. 뭔가 할 일이 있고, 사람 만나는 빈도가 잦거나, 처리해야 할 일사들이 산적해 있을 때 꿈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많은 꿈이 일에 묻히다 보면 깡그리 잊고 만다. 신통방통한 일이다. ‘꿈자리가 사납다는 그 사실을 활동하는 내내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성가실까? 일에 묻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퇴근 후에야 생각나게 하는 나날들엔 꿈은 많았지만, 그 꿈들이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어느 시절엔 통 꿈이 꾸어지지 않아서 싱겁게 생각한 적이 있다. 꿈이 좀 보였으면 좋겠는데, 생각할수록 꿈이 꾸어지지 않았다. 더러 낚시를 갈 적이면, 간밤의 꿈자리가 좋아 월척을 했다는 옆자리 친구의 환호성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어떤 재수 좋은 사람은 간밤에 돼지꿈을 꾼 다음 날 복권을 샀더니 1등에 당첨됐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내겐 꿈 복도 없다며, 은근히 꿈이 보이지 않는 밤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나의 경우 이렇게 꿈이 꾸어지지 않는 날들은 비교적 삶이 평탄한 날들이었음을 기억한다. 당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번다하게 만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형편도 아니었을 때, 이런 날들이 지속되면 꿈도 꾸어지지 않았다.

꿈이 꾸어지지 않아 월척을 낚을 수 없다고 불평할 일도 없고, 돼지꿈을 꾸지 않아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다고 탓할 일도 없는, 평탄한 날들은 꿈이 미리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나타나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는 밤들이 고맙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꿈이라는 것이 잠자리에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꿈이 없는 삶을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치부한다. 꿈이 없는 청소년, 꿈이 없는 청춘남녀, 꿈이 없는 사업가, 심지어 꿈이 없는 예술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물론 이때의 꿈은 잠자리의 꿈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포부요, 인생 설계에 따른 목표요, 사랑의 궁전을 짓겠다는 설렘이요, 세계시민을 감동하게 하려는 이상임을 안다. 그래도 그것은 꿈이다. 즉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들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으로 포장하여 내보인다.

잠자리에서 만나는 꿈이 꿈꾸는 동안은 생생한 실감을 주듯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들에 도전하는 사람일수록 그 꿈을 현실화하는 일은 그만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꿈도 있다. 백일몽이다. 벌건 대낮에 꾸는 꿈이다. 인생의 포부와 목표, 창조적 희망과 이상으로 말하는 꿈은 밤에 꾸는 꿈이다. 실현 불가능한 헛된 공상을 백일몽이라 한다.

그렇다면 밤에 잠자리에서 꾸는 꿈과 벌건 대낮에 꾸는 꿈은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 달라서 앞의 꿈은 희망의 상징이 되고, 뒤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공상이 되는 걸까? 그 차이와 다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잠을 잘 때의 꿈은 잠의 연장선에서 얻어지는 부수 효과다. 그래서 꿈을 깨도 밤이요 어둠이다. 하지만 활동해야 할 한낮에 꾸는 꿈은 활동의 연장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부수 효과일 따름이다. 그래서 낮 꿈[백일몽]을 깨고 나면 낮이요 빛이다. 어둠[]은 빛[현실]을 이길 수 없다.

꿈과 비슷한 체험에 술이 있다. 술도 술 나름이지만 아무튼 술을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잠자듯, 꿈꾸듯 왜곡된 현실을 그려보는데 그만이다. 젊음이 방황하던 시절, 궂은비 내리는 날이면 빗줄기를 맞으며 낮술을 퍼마시기도 했다.

함박눈 내리는 겨울이면 산골학교에서 당직을 서며 돼지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낮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런 술들이 낭만을 불러와 낭만 가득한 시를 써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젊은 한 시절을 꿈 비슷한 취기에 젖어 방황을 접을 수 있는 계기는 되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직시절에 술을 한 잔 이상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대통령은 언제 어느 때 국가의 중대사를 두고 결정을 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대통령이 취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유시민 작가가 노무현 대통령을 술회하는 대담에서] 그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방황하는 젊음이 낮술 한 번 마시지 않았다면, 온실에서 컸거나 물정 모르는 샌님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와 국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 술타령을 자랑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능한 백일몽 같다. 그게 현실이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