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 있는 좌표에서 진실을 찾는다
내가 서 있는 좌표에서 진실을 찾는다
  • 김규원
  • 승인 2023.02.20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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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隨想 - 8

 

詩想隨想 - 8

 

아내와 둘만 살고 쓰는

우리집 냉장고에

여름현자를 들이지 않은지 몇 년 됐다

우선 명성만은 덩치처럼 커서

서늘한 사유의 곳간에 앉힐 자리가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 우람한 물성을 허물어 삭히자면

썩어 문드러지는 풍문이

악취를 내뿜기 때문이다

벌겋게 익었다며 현자의 책등을 두다리며

솔깃함으로 구매하길 유혹하던 행상 역시

알 수 없는 속내

그 야리끼리하게 변절한 색상마저

어찌 청진기로나마

진맥할 수 있겠는가, 하여

 

-졸시수박전문

수박은 여름 과일의 대표선수다. 삼복더위에 찌들어 짜증이 날지라도 잘 익은 수박을 한 입 깨물기만 해도 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더위만이 아니다. 달콤하게 고이는 그 서늘한 과즙의 풍성함은 여름짜증을 지우기에 십상이다. 그 많은 양은 또 어떤가. 몇 조각만 먹어도 포만감을 주는 수박은 서민들의 여름과일로 사랑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근래 들어 수박을 잘 사지 않는다. 우선은 식구가 단 둘인 관계로 그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몇날며칠이고 자리만 차지하고 줄어들 줄을 모른다. 그러다가 끝내 수박을 다 먹기도 전에 그 물성 많은 수박이 상한 뒤에야 뒤처리에 골머리를 앓곤 한다. 그러니 아예 수박을 살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어쩌다가 여름철에 수박타령이라도 할라치면 안식구의 돌아오는 지청구에 볼멘소리는 쑥 들어가고 만다.

요즘 영농법이 발달하여 그런지 수박의 덩치가 날로 커지기만 한다. 그래서 웬만한 수박은 들기에도 벅차다.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보니 한두 사람이 먹기에도 벅차기는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그 맛있는 수박을 사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이런 형편을 감안하여 그런지 왜소한 수박을 개발했다며 시중에 나오는데, 시식해 보니 입맛들인 그 맛이 아니었다. 그런 뒤로는 작은 수박도 흥미를 잃었다. 대형마트에서는 큰 수박을 몇 등분 쪼개어 판매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쉽게 다가서지 않는다. 대형마트가 집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갈라놓은 수박이 오염에 취약할 것은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여름과일의 대표선수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세상이 되었다.

여름철이 되면 잘 익은 수박을 고르는 방법들이 여기저기에 소개되기도 한다. 수박꼭지가 싱싱하게 붙어 있는 것이 잘 익었다든지, 수박을 두드려봐서 둔탁한 소리가 나면 잘 익은 것이라든지, 아니면 수박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진 것이 잘 익었다는 둥 설이 분분하다. 이렇게 방법이 난무한 것은 수박 속을 쪼개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일단 쪼개고 나면 상인이나 소비자나 난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장님 문고리 잡듯, 재수보기 심정으로 수박을 고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수박의 미덕을 들먹이며 수박타령을 하자니, 여름도 아직 멀었는데 뜬금없이 무슨 수박이냐는 힐난이 들리는 듯하다. 수박이 미덕만 지닌 과일은 아닌 모양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족속을 비유할 때도 수박을 들먹이니 하는 소리다. 수박의 겉은 파란색을 기본으로 줄무늬가 보기 좋게 줄지어 있다. 겉의 파란색과는 달리 수박을 쪼개보면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빨간색이 들어차 있다. 그래서 겉은 동지[파란색]인 줄 알았는데, 그 속은 적대적 반동분자[빨간색]을 지칭할 때 수박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수박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파란색이 짙을수록 빨간 속살도 맛있게 익어서 여름과일의 대표선수가 되었는데, 이를 비틀어 반동분자를 일컫는 데 쓰인다니, 그래도 수박이어서 다행이다. 사람 속내는 쪼개볼 수도 없고, 깨뜨려볼 수도 없으니, 누가 진골이고 누가 반골인지 알 수 없어 난감할 터이다.

그래도 그것을 가리는 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자면 항상 진실의 편에 서도록 애를 써야 한다. 동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동지인지 적인지 가늠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이, 어느 편이 진실인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가 서 있는 좌표가 중심이 된다. 그 좌표는 지금-여기를 말한다. “[]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에 응답하노라면 적과 동지는 저절로 분간되기 마련이다.

등산 중에, 숲속에서, 사막에서 길을 잃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나침반이 없다면 별자리나 해와 달을 보며 길을 찾는다. 그것들이 유용한 것은 그들은 항상 지금-여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침반의 바늘이 늘 남북을 가리키듯이, 별자리가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듯이, 태양은 언제나 동쪽에서 떠오르듯이, 달이 변함없이 변하는 모습을 규칙적으로 보여주듯이……!

그런데 몸은 파란색이면서 머리는 빨간색으로 물든 머리, 정의로 열린 입에서 쏟아지는 불의를 편드는 말, 파란색의 이념을 입은 채 빨간 속옷을 걸친 사람……, 제 편의 장수가 위험에 빠져 있는데 저만 살겠다며 줄행랑을 놓는 병사, 제 편 대표가 모함을 당하고 있는데 자진해서 항복하라는 사이비 당원, 진영이 외침을 당하고 있는데 제 편에 삿대질을 해대며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구성원은 지금-여기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속이 빨갛게 익었다면 맛이라도 좋을 터인데, 수박으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수박은 어쩔 수가 없다. 이들을 서늘한 사유의 냉장고에 며칠 넣어두고 보면 안다. 그들이 지금-여기의 좌표를 잃어 악취가 진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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