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적 이디엄이 시를 재미있게 한다!”
“토속적 이디엄이 시를 재미있게 한다!”
  • 김규원
  • 승인 2022.10.24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야 이바구를 할 틴디

오늘따라 한 사람도 안 뵈는구마잉

산문 밖 할배 장승이 벌써 다 시부렁거리부렸나

그래 선 자리서 댕기가셨구만이라

동백 꽃망울 더는 참지 못하고

시방 막 터질 참인디

댕그랑 풍경 소리 가슴을 적실 참인디

법문은 무슨 법문, 그게 다 잡소리제

오늘은 입 다물고 있는 기 상수랑께

요로코롬 돌팍에 주저앉아

뜬구름이나 쳐다볼 텐께

 

-박노정(1950~ 경남 진주)불회사佛會寺전문

 

  불회사는 佛會寺. 불자들이 모여서 불심을 닦는 절이다. 그런데 주지스님은 불자들이 모이는 절이라 했는데, 불자들은 모두 어디로들 갔는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회佛會가 불회不會가 되었나 보다. 불자들이 일단 모여야 설법을 하든, 법문을 하든, 설교를 하든, 무슨 이바구[이야기-]을 할 것이 아닌가? 참 딱한 노릇이다. 절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불자들의 외면이 스님에게는 난감할 노릇이다. ‘오늘 따라 한 사람도 안 뵈는구마잉하며 그 난감함을 입에 붙어 습관이 된 말버릇으로 되뇔 뿐이다.

  사실 이 시의 매력은 그 '이디엄-idiom'에 있음을, 독자들은 벌써 눈치 채고 말았을 것이다. 시는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문법적 언사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천성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시가 무슨 뚝배기 장맛도 아닌데, ‘시의 말맛이라는 게 바로 이 이디엄에서 찾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디엄은 겨레의 삶과 함께 하면서 체질처럼 몸에 붙은 말-말버릇을 이른다. 관용어나 일상어는 물론,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한 말투요 말버릇이 바로 이디엄이다. 이 시는 전적으로 그런 말버릇-이디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불자들이 [주지]스님의 이바구를 듣지 않겠다고, 불회사에 오지 않는 까닭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산문 밖 할배 장승이 벌써 다 시부렁거리부렸나/ [그래서 불회사로 내친 걸음을] 그래 선 자리서 댕기[돌려]가셨구먼이라한 것이다. 이왕의 설법을 그 높은 절까지 가지 않고도 절문 밖에 서 계신 장승 할배에게서 다 들었는데, 굳이 절까지 걸어 올라가 들을 필요가 없었을 터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절에서 듣는 이바구가 장승할배의 이바구뿐이겠는가? “동백 꽃망울 더는 참지 못하고/ 시방 막 터질 참인디동백이 하는 이바구는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주지]스님은 오지 않는 불자들을 탓하며, 자꾸만 산문 밖, 시방 막 참지 못하고 [법문을]터뜨리는 동백 꽃망울에게 눈길을 보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회사 절집 처마 끝에 달린 풍경에서도 가슴을 울리는설법이 될 법할 텐데, 불자들이 모이지를 않는다고 타령이다.

  그러나 역시 불심 깊은 [주지]스님-시적화자는 이내 깊은 통찰로 회심回心한다. “법문은 무슨 법문, 그게 다 잡소리제/ 오늘은 입 다물고 있는 기 상수랑께/ 요로코롬 돌팍에 주저앉아/ 뜬구름이나 처다볼 텐께라고 마음을 돌려 먹는다. 스님 자신의 법문을 들으러 오지 않는 불자들을 기다리는 오늘은 천지 만물이 다 설법이라는 것이다. 동백 그 탐스럽고 부풀어 오른 정염의 자태가, 봄바람이 풍경을 흔들어 가슴을 적시는 한적한 소리가, 행운유수行雲流水 인생의 희로애락을 설법하며 떠가는 구름이, 바로 이바구[설법-법문-설교]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불회사에 모인 대중이 어찌 사람만이랴!

  그나저나 경상도 진주 출신의 시인이 어쩌면 이렇게도 감칠맛 나게 전라도 이디엄을 능청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야기이바구라고 하는 것은 경상도 방언이니 그렇다 치자. 그래도 종결어미에 “~하는 강세조사를 덧붙이는 것은 전라도 이디엄의 특성으로 알았는디, 그게 아닌겨? 하긴 진주와 전라의 남도는 이웃지간이니 이디엄이 서로 섞바뀌어 쓰였대서 이상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이 시에서 말맛을 살리는 이디엄들이 낱말밭의 소중한 소출물이다. 새삼스럽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시를 어루만져 본다. “~할 틴디, ~뵈는구마잉, 할배, 시부렁거리부렸나, 댕기가셨구만이라, 시방, 막 터질 참인디, 가슴을 적실 참인디, 잡소리제, ~기 상수랑께, 요로코롬, 돌팍에이디엄들이 제대로 된 이바구꾼을 만나서 제대로 된 말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그렁께, 시라는 게 말이시, 요로코롬 타고난 말투를 잘 쓰야 헌다 그말이제잉?!

  패러디는 예술 창작의 한 모티브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모창 모청이 유행이다. 일종의 패러디다. 특히 연예인들이 전매특허로 여기며 사람들을 웃긴다. 모창은 특정한 사람의 노래 솜씨를 그럴싸하게 흉내 내어 사람들을 웃기고, 모청은 특정한 사람의 말소리-목소리의 그럴싸한 흉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이들 패러디하는 사람을 알아야 웃음이 될 수 있다. 당사자를 모르고서는 웃음이란 감정선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지만 시의 패러디는 모든 사람이 낱말밭에서 말맛을 거두어들이는 재미가 있다. [문학]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이가 공유하고 있는 이디엄이라는 공통의 말밭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