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 정국·식물국회를 살리려면…
마비 정국·식물국회를 살리려면…
  • 이옥수
  • 승인 2009.07.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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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문이 시국과 세태를 풍자한 시사만화를 실은 역사는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일제에 강제로 합병되기 1년 전인 1909년 6월 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삽화가 효시다. 양복을 입은 신사가 대한민보 네 글자로 각기 4행시를 낭독하는 그림으로 세상을 똑바로 보고 국민의 소리를 정확하게 전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시사만화는 그 후 1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왔다. 시사만화가 눈부시게 꽃 피운 때는 1950년대. 동아일보가 1955년 1월부터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을 이어 7월부터는 경향신문이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를 연재했다. 

3공-유신-5공 기간 동안 여·야간의 농성 점거 극한대치로 정국이 얼어붙고 국회가 공전할 때면 안화백이 어김없이 그리는 시사만화의 컷이 있다. 즉 의사당을 짊어지고 강이나 바다로 가서 던진다. 이때 두꺼비는 “언제쯤 정신 차릴 것인가” “아예 멀리 떠나거라”고 외치거나 “폐가 헐값으로 매매”라고 써 붙였다. 

작년 연말 이래 두 차례 법안전쟁 등으로 국민들을 개탄, 분노케 했던 국회가 또 마비상태로 돌입했다. 야당이 5대 조건을 내세워 국회소집을 거부하자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소집했으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한 채 법정시한을 넘기는 우를 범했다. 

3개 법안으로 된 비정규직근로자 보호법은 2006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후 이듬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후 사용자가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하게 돼 있다. 따라서 지난달 말까지 여야는 비정규직들이 힘없이 대량으로 쫓겨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법 개정 합의·처리에 실패했다. 각기 쇠고집과 정략 때문에 순수한 민생법안이 비정규직법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비 국회-교착정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거대여당답지 않게 무능을, 민주당은 무책임을, 정부는 무기력을 드러냈고 이런 3무속에서 국민과 근로자들만 속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해결에 실패하면서 정치권은 참으로 여러 가지 해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합의실패-해고 대란이 예상되는데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서로 네 탓 타령만 한다. 상대방의 제의·의견은 철저히 무시한다.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개정안을 상정조차하지 않은 것은 말도 안 된다. 위원장이 협상중재를 주도했어야 했다.

또 교섭단체들이 쉽게 생각하고 양대 노총을 끌어 들여 합의는커녕 시간만 허비한 것은 난센스다. 3월 이래 한나라당이 야당설득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은 나태와 무책임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회는 기능이 정지되고 꽉 막혀있다. 일부에서 헌법 76조의 대통령 긴급재정경제 명령권을 발동할 것을 제의한 것은 말도 안 된다. 긴급명령권은 내우 외한 천재지변 등의 비상사태 때, 국가안보와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국회를 당장 열 수 없을 때나 발동할 수 있다. 이런 것에 의존하려 한다면 정당과 국회는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한나라당은 힘이 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야당을 설득·타협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배경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 오늘의 마비국회 식물국회를 봤다면 어떤 풍자만화를 그릴까. “차라리 해산하라”고 하지 않을까. 국회는 죽었는가.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국민은 분노한다고 말이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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