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주신 큰 유산
아버지가 주신 큰 유산
  • 전주일보
  • 승인 2024.03.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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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용만/수필가
이용만/수필가

아버지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그래서 겨우 한글을 읽을 정도가 학력의 전부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자녀 교육에 대하여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는 교육대학을 나온 나보다 훨씬 자녀들을 잘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몸소 모범을 보이시는 것으로 자녀들을 가르치셨다. 그중 가장 확실하고 값진 것이 아침 일찍 일어나기였다.

아버지는 항상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도록 하셨다. 어떠한 경우라도 먼동이 튼 후에 일어나는 일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전날 늦게 잠들었거나 피곤하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일어나면 일단 밖으로 나가 무언가는 해야 했다. 대부분 논밭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자녀들을 깨우는 것도, 자신이 일어나서 바로 깨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일할 준비를 마쳐놓고 자녀들을 깨웠다. 고개 너머에 있는 밭에 거름을 낼 때도 지게에 거름을 한 짐 짊어놓고 소리를 높이셨다.

일어나거라. 나 지금 밭에 갈란다.”

그런데도 일어나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면 작대기로 마루를 꽝! 치셨다.

먼동이 터오는데 빨리 일어나지 않고 뭘 꾸물대고 있느냐?”

그러면 번개같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벌써 지게에 거름을 잔뜩 지고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때 만들어진 일찍 일어나기 버릇이 지금은 나의 자랑거리 1호가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이것만큼 나에게 유익을 준 것이 없었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전날 아무리 늦게 잤어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 한나절 일을 한다.

 

베트남 다낭에 갔을 때였다.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두 시간의 시차가 난다. 그래서 평소의 새벽 4시가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6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4시에 눈이 똑 떠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2시인 것이다. 덕분에 해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미케비치 해변 모래밭을 걸어 하루에 걸어야 할 1만보를 다 채우기도 했다.

새벽 시간은 나에게 확보된 시간이다. 그래서 일이 밀려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 시간이면 한나절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이니 효율 면에서는 한나절보다 더 좋은 알짜배기 시간이다.

이렇게 확고한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일을 부탁받게 되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거 내일까지 해야 되는데요. 시일이 너무 다급해서요.”

미안해하는 그에게 걱정 말라고 한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니 건강에도 좋다. 새벽에 가까운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 가서 아침 운동을 할 수도 있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해도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다.

이것은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따로 교육을 시키시지 않았어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만은 철저히 지키게 하셨기에 그것이 습관화되어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행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유산을 남겨주셨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일을 남겨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교육학도 배우고 아동심리학도 배웠는데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은 아버지가 했던 일을 나는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혼자 중얼거린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그 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다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언가 하나쯤은 가르쳐 주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재산을 많이 남겨주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야말로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는 확실한 유산인 것이다.

아버지가 주신 유산을 생각하면서 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지가 남은 과제가 되었다. 자녀들이 아버지인 나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일까?

아버지의 유산은 크고도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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