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을 찍다
고향집을 찍다
  • 전주일보
  • 승인 2024.03.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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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굽은 소나무들이 길은 내준 마을 어귀에 차를 받쳐놓고

게딱지같은 집들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마을을 담았다 

이제 해외로 나가면 언제 올지 기약조차 없는 나를
마을은 옛날처럼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대문을 밀자 아버지의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붉은 칸나가 땀을 흘리며 마당을 쓸고 있었다

송골송골한 땀방울을 통화버튼을 누르듯이 손수건으로 꾹꾹 눌렀다

지금은 부재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가 반향反響으로 돌아온다

텅 빈집을 아버지를 닮은 감나무가 우직하게 지키고 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핸드폰에는 손자들이 와르르 얼굴을 내밀었다

버튼이 대처로 나간 자식들 걱정으로 반질반질하다 

그리운 목소리가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고향 집 마당에서

아버지가 핸드폰에 자식들을 담듯이 나도 추억들을 차곡차곡 스마트폰에 담았다

먼 훗날 내 가슴의 빈터에 사진 한 장 아침 해처럼 솟아오기를 염원하며 오래도록 고향집 마당에 서 있었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다. 고향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강하게 주는 말이면서도, 정작 ‘이것이 고향이다’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고향은 시간·공간·마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을 담고 있어 생물학적 탄생과 일치시켜 어머니와 동격으로 보기도 한다. 다정함·그리움·안타까움 등의 정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타향살이·귀향·낙향·실향·향수 등 고향과 관련한 많은 말들은 사소하지만 서로 다른 복합적인 심성을 담고 있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향離鄕이며, 타의에 의하여 고향을 잃으면 실향失鄕이다.

또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름은 향수鄕愁·객수客愁·여수旅愁라고 한다.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다. 이처럼 다양한 단어가 있음은 우리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이지만, 다른 나라에 가 있을 때는 곧 고국(조국)을 일컫는다. 이때 고국을 그리는 교포는 타국이며, 일제 강점기 같은 경우는 망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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