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은 숙제
여전히 남은 숙제
  • 전주일보
  • 승인 2024.03.0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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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수필가
김영숙/수필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 맺듯 때가 되며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고 순리대로 우주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게 자연의 순리이다.

인생도 그렇다. 태어나서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를 살다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흔히 우리는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병으로 가는 사람, 사고로 가는 사람처럼 인간의 삶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많다. 그중에 치매라는 병은 더욱 그런 것 같다.

 “할머니 좀 비켜주세요. 내 빠방이가 여기로 가야 해요”
 “이놈아! 넓은 곳을 두고 왜 꼭 내 뒤쪽으로 간다고 그려, 이쪽으로 가랑게”
 “아녀요, 이쪽이 빠빵이 길이예요”

아이는 마음대로 장난감 찻길을 정해놓고 그 길로만 가겠다고 고집하고 어머니는 넓은 곳을 두고 하필이면 왜 당신 등 뒤로 다니냐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이럴 때 나는 둘 사이를 중재해야만 한다.

“준호야! 할머니 움직이기 힘드니까 준호가 이쪽으로 길을 다시 내면 안 될까? 할머니가 길 만드는 거 도와줄게”

“어머니 조금만 앞쪽으로 옮겨 앉으세요. 아니면 소파에 올라앉으시든지요”

먹을 걸 두고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이거 준호 거잖아요. 준호 거 먹으면 안 돼요. 할머니는 할머니 것 드세요”

“이 치사한 놈아! 좀 먹으면 어디가 덧나냐?”

이럴 때도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준호야, 할머니도 드시라고 해야지”

“어머니, 어머니는 따로 드렸잖아요. 왜 어린아이 걸 뺏어 드세요”

분쟁이 있을 때마다 늘 나름대로 화해와 협상을 유도하지만, 중립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늙으면 애 된다고들 한다. 어머니는 정말로 네 살 손자 녀석과 눈높이가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니 아이는 우는 일이 잦았고 어머니는 ‘아이고!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는 어린 증손자하고도 싸우네! 이제 고만 죽어야 할 텐데 죽지도 않네! ’ 넋두리하시지만, 이제는 그 말씀을 듣는 것도 습관 되어 놀라지도 화도 안 난다.

늘 치르는 일이지만 이 전쟁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나 또한, 중재자 역할을 내려놓고 순간 울컥함에 감정을 앞세워 어떻게 어린아이랑 싸우냐며 화살을 어머니에게로 돌릴 때가 있다.

맑은 정신일 때는 눈에 넣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안아주시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꼬맹이와 같은 시대를 사는 듯 어린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나 역시 순리를 거슬러야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음에 둘의 눈높이로 서서 중재하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집에는 비무장지대가 있었는데 그곳을 나름대로 평화지대로 유지하며 잘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자녀 덕이었다.

아무리 격한 다툼이 있어도 그들이 나타나면 아무 일 없는 듯 즉각적인 휴전을 선포하고 그들이 내미는 협상에도 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현명한 화해와 협상을 유도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 가정이란 지대를 조성했으니, 역으로 우리 부부가 그들의 비무장지대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며 수필을 썼었는데 그 고민 마저 사치가 되었다.

손자 녀석과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가 그 평화를 깨며 날마다 티격태격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들이 중동지역 군사 협력단으로 파견 나간 몇 달간은 며느리와 육아를 분담하고자 주말이면 네 살짜리와 이제 9개월 된 손자 중 한 명을 데려와 돌보는데 큰 애를 데려오는 날이면 우리 집은 언제나 전쟁통이다.

치매라는 병에 걸린 여든네 살의 시어머니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어린이가 되어 사신다. 매일 아침 주간 보호센터에 가시는 어머니께 “어르신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놀다가 오세요”

당부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이라는 순리를 역리 하여 동심을 오가는 어머니의 삶도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과정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순간순간 울컥하고 순간순간 먹먹하다.

그리하여 나는 반쯤 마음은 내려놓고 귀는 반쯤 닫고 살기로 한다. 그래서 ‘이 꼴 저 꼴 안 보고 언능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네!’

돌림노래처럼 흥얼거리셔도 어쩔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우리 집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상황에 따라 해제되기도 형성되기도 한다. 다만 당분간 손자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슬기로운 중재자가 되어야 함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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