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에 인 들불처럼
황토에 인 들불처럼
  • 신영배
  • 승인 2024.03.05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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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황토 땅이다. 붉은 황토 땅이다. 핏빛처럼 붉은 황토 땅이다.(쉬었다. 흙 만지는 손 보고) 그중 정읍지역 황토는 유난히도 붉다./ 비가 흩뿌리는 고부 들녘. 한 움큼 쥔 황토(黃土)는 선명하게 붉은색이 솟아오른다. 동학농민혁명 110주년 전후 방송했던 ’KBS신한국기행 붉은 땅 정읍다큐 프롤로그다. 아직도 생생하다.

2024, 올해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다. 1894년 음력 정월 초열흘.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시달린 농민들은 고부관아로 진격했다. 농민혁명의 시작이다. 지난 219,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깃발이 내걸린 기념식이 고부에서 열렸다.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사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혁명정신은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에 이어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져 새로운 대한민국의 동력이 됐습니다.” 정읍시장은 말했다. 폭정에서 시작된 봉기는 두 달여를 걸쳐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메마른 황토 위에 들불로 번지기 시작했다.

음력 320(올해 428).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봉기는 붉은 황토 땅, 들판을 건너 흥덕·고창을 거쳐 무장에서 큰불로 당겨졌다. 들불이다. 국지적인 한계를 넘어 전국적인 농민봉기 출발점이 된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

기포지가 고창군 공음면 구수마을이지만 당시는 무장현(茂長縣)이기에 무장기포라 명명된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혁명의 대의명분을 설명하며 봉기를 선언했다. 올해도 고창군에서는 어김없이 정읍처럼 무장기포제를 성대하게 준비할 것이다.

한동안 정읍시와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지정을 두고 신경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오랜 숙의를 거쳐, 농민군이 정읍 황토현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한 511일을 2019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이제는 매년 정부 사업으로 법정 국가기념일로 크게 기린다.

한편 531, 매년 시민들이 거행했던 전주 입성 기념식을 지난해 처음으로 전주시가 주최했다.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수부였던 전주에 입성해 전라감영에 농민군 총본부인 대도소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전주 동학농민혁명 기념주간 행사는 31일부터 615일까지 2주간 학술대회와 특별미술전, 체험 행사 등이 진행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그동안 오랜 시간 동학란(), 동학운동, 갑오농민전쟁 등 다양하게 불려오다 정명(正名) 논란끝에 오늘날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전북에서는 정읍시와 고창군, 그리고 전주시 등 매년 지자체별로 다채로운 방법으로 기념한다.

정읍시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만들어야 할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발통문행사도 진행했다. 사발을 가운데 놓고 거사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서명한 방식이 사발통문이다. 전주시에서는 지난해 유적지 탐방 행사와 체험도 진행했다. 농민군이 처음 입성한 전주성 남문(豊南門)과 전라감영 선화당 탐방. 고창에서도 농산물에 황토배기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사용해왔다.

며칠 전 빗길의 호남고속도로. 논산에서 익산·전주·정읍·장성·광주에 이르는 길. 차창에 비친 호남 들녘은 물 머금은 황토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 올라온다. 붉은 땅 황토다. 몇년 전 12월 중순. 일본 신간센(新幹線) 도쿄발 오사카행 기차가 가로지르는 땅, 거무스레한 잿빛 땅이 일본이다. 반면 우리 전라도 들판은 따스한 빛이 올라오는 금빛 산하(山河)’. 바로 그렇다. 전북의 붉은 산하가 동학농민혁명을 불러낸 것이다.

118. 전북특별자치도는 전라도에서 남북으로 분리된 지 128년 만에 전라북도에서 새롭게 출범했다. “농생명산업, 문화관광산업, 고령친화산업, 미래첨단산업, 민생특화산업 5대 핵심사업이 전북발전을 주도한다.“고 발표했다. 특별자치도로 받은 실질적인 권한과 변화들은 1년 후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에 도민들이 새로이 함께해야 할 전북정신(JeonBuk Identity)’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지역은 예부터 산불이라는 말보다는 들불이었다. 쥐불놀이하는 정월대보름 불도 들불이다. 끝없는 들녘에서 이어지는 들불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19193·1, 19805·18광주민주화운동, 19876·10민주항쟁, 2016년 촛불시민혁명까지. 황토 땅, 전북에서 일기 시작한 들불은 한국을 변화시켜왔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2024.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자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원년(元年)이다. 130년 전 전라 산하, 황토에 붉게 타올랐던 금빛 들불이 명제다. 서구 각국의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은 상징물을 떠올린다. 들불 정신-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탑. 농민군이 입성한 전주 풍남문광장이 제 자리다.

전북은 한국 혁명의 발상지이자 한민족 우리겨레 성지(聖地).

 

#김정기(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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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 2024-03-06 10:54:46
이글을 보니 역사를 다시 배우는거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