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16대 링컨 대통령이 들으면 땅속에서 벌떡 일어나 “이게 뭔 일이대요?”하고 물어 올듯하다.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의 민주주의 초석을 놓았던 링컨은 나라 정치의 근본이 국민에 있음을 분명히 규정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 그의 말이 새삼 생각나는 요즘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에게 새만금 예산 이야기를 했던 강성희 국회의원이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막히고 사지를 겨리박하듯 붙잡아 끌려나갔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KIST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대통령에게 R&D 예산 복원을 주문했다가 입틀막과 함께 사지를 들어 올려 식장 밖으로 끌어내서 경찰에서 조사까지 했다고 한다.
군주시대 임금 행찻길에도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준 일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의 경호도 이런 식으로 입틀막에 사지를 들려 끌어내는 경호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고 나름 건의하는 행동을 이처럼 과도하게 대응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무리한 경호가 있으면 대통령이 제지라도 해야 할 터인데 당연한 듯 넘어갔던 걸 보면 경호지침에 그렇게 정하고 있으려니 싶다.
입틀막 정치라니, 도대체 이 나라가 어느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국민의 임을 틀어막고 뭘 어떻게 하지는 것인지…. 옛날 조선시대에도 일부러 임금이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평민으로 가장하여 변복(變服)하고 시정(市井)의 여론을 들었다는 기록이 얼마든지 있다. 국민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여론이 어떤지 알아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정치는 독재로 흐르기 십상이다. 주변에서 알랑거리는 아부꾼의 말만 들으니 하는 일마다 옳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을 비판하고 풍자하거나 희화(戲畫)화하는 일도 단속이나 규제 대상이 된다는 말도 들린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 단속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그럴 일이 없지만, 하도 멋대로 법이 날뛰고 있으니, 귀걸이 인지 코걸이 인지 불안하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은 문화에서 음식까지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한류를 타고 비상(飛翔)하는 듯하다. 나라가 중흥(中興)의 호기(好期)를 맞은 것이다. 세계 각국이 한국어를 제1외국어나 제2 외국어로 선택하고 한글을 배우는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다양한 재료와 조리 방법을 자랑하는 한식에 눈을 뜬 세계인이 한식의 맛을 알고 길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 한식당이 개점하여 호황을 누리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이런 호기이건만, 우리 정치는 아직도 초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서로 할퀴고 물어 뜯는 데만 열중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뒤처진 부분이 바로 정치다. 국민의 의식수준은 미래를 달리자는데 정치가 발목을 잡아 날으려다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정치를 하면서 입만 열면 국민이고 혼자 애국자인 양 생색을 낸다. ‘말이나 하지 않으면 덜 미울 것’이라는 원망처럼 삼류 정치판에서 쏟아지는 말은 늘 고상하다.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친다는 정치인들의 시커먼 뱃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날이면 날마다 충돌하고 싸우는 듯해도 세비를 올리거나 그들에게 이로운 결정을 할 때는 금세 일사불란(一絲不亂), 한통속이 되어 뚝닥 해치운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다가도 회의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형님 동생을 부르며 손잡고 깔깔대기도 한다. 국민은 그들의 정치 쇼에 늘 속으면서도 선거 때는 표를 준다.
우리 국회를 평가하면서 흔히 사례로 드는 북유럽 국가의 의회 이야기는 우리에게 충격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100명 정도의 적은 의원, 실비 보상도 안 되는 세비, 파벌이나 계파 따위의 패거리 정치와는 거리가 먼 봉사 수준의 의회 이야기에 부러운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300명 국회의원과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연간 낭비하는 예산이 얼마인가? 그 외에도 정치인들이 받는 헌금과 기업이나 정치관련 업체와 단체에서 직간접으로 받는 협찬금과 비자금 등을 모두 합하면 조(兆)단위 액수가 될 것이다.
국회만 아니라 지방의회가 낭비하는 예산은 또 얼마인가? 지방의회도 국회를 닮아 점점 낭비하는 예산액이 증가 일로에 있다. 주민의 대표로 자치단체장의 전횡을 감시하고 개선하겠다는 당초 목적보다 각자의 사업 보호나 입신양명, 생업 수단으로 삼아 활동하는 지방정치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지방의회도 해가 갈수록 의정활동비는 증가 일로에 있고 상당수 지방의원들은 직간접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의회 진출의 근본 목적이 의심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지역에서 경영활동으로 안면을 넓힌 덕분에 당선하여 기업을 보호하고 이익을 얻는다.
중앙정치나 지방정치인 모두 한결같이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게 대부분이다. 정치가 국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국민생활에 기생하는 기생충에 다름아닌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회의원 공천 기준도 권력을 가진 자의 의중에 따라 변한다.
링컨이 말했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정치를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답답한 모습이다. 정말 정치만 웬만큼 수준에 이른다면 남 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수 있을 대한민국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호시절인데, 삼류도 안 되는 정치가 나아가려는 발목을 물어뜯고 있으니 큰일이다. 달리려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물어뜯어 아킬레스건을 잘라놓으려는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썩은 정치 관행을 갈아엎는데 필요한 건 국민의 건전한 정치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