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호강하던 날
발이 호강하던 날
  • 전주일보
  • 승인 2024.02.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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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종/수필가
백금종/수필가

휘황찬란한 프놈펜의 밤, 발 마사지가 있겠다는 안내인의 말 한마디. 일행은 함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톤레삽 호수를 산책하고, 민속 마을을 둘러보고, 앙코르와트 유적을 탐사하느라 발은 진땀 나는 고역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남국의 찌는 더위에 몸은 천근만근이고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모두가 들뜬 기분이다. 새로운 경험을 목전에 둔 어른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기야 색다른 일에 감흥이 없다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설왕설래 고무된 분위기 속에 한참을 달린 버스가 번화한 곳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번쩍거리는 불빛이 남국의 정취를 마음껏 쏟아냈다.

 

입구에서부터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나라의 토속 향취라 할까? 사람을 자극하기 위한 유인제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맡을 수 없는, 조금은 역겨운 냄새로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예쁜 침대 위로 눕자 아리따운 여자가

반가워요

살며시 눈웃음 친다.

나는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곧이어 양말을 벗기고 하의를 걷어 올렸다. 익숙한 손놀림이다. 오일을 바르더니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섬뜩했다. 아니 야릇했다. 그간 아내 말고는 내 발을 손을 댄 여인이 있었던가? 그것도 이국의 젊은 여인이. 나의 신경은 온통 그녀의 손길에 가 있었다. 발등에서 부터 시작하여 발바닥,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밀고 당기고 흔들고 두드리며 성의를 다하는 듯싶다.

 

발 마사지! 나는 그간 살아오면서 마사지는 고사하고 발을 위해 애쓴 적이 별로였다. 청년 시절 세 마지기 논배미에 들거나, 산비탈을 헉헉거리며 오른 후에 뜨거운 게르마늄 온탕에서 깨끗이 씻은 것이 고작이요, 몸이 지치거나 쓴 내 나는 하루를 마감한 후에는 족욕 한 것이 최고의 배려였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미끈한 오일과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스쳐 가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좋았다. 모처럼 받아보는 이 호사를 마음껏 즐기고픈 심사도 한몫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도 일순 사라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못생긴 나의 발 때문이었다. 실은 내 발에는 무좀이 있다. 해안가 오지 학교에서 내빈용 실내화를 잠깐 얻어 신은 것이 화근이었다. 校舍 뒤편에 송림이 병풍처럼 서 있고 앞으로는 서해가 아스라이 펼쳐져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에 흡족했는데 평생 달고 사는 고질병을 얻을 줄이야. 이 여인은 그동안 각국의 많은 손님을 상대하며 이 작업을 이어 왔지 싶다. 당연히 많은 발을 보았을 테고, 그중에는 고운 발도 많지 않았을까?

 

 

 

못생긴 엄지발톱의 내 유년의 훈장이다. 사변 후 군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휴가차 집에 오셨을 때 왁자한 분위기 속에서 천방지축 뛰놀던 내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다듬이를 내 발등으로 밀친 것이다. 엄지발가락은 으깨어지고 발톱이 뒤틀리고 피범벅이 되었다. 나는 그 상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칭얼댔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못생긴 발이나 발톱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만 알았지 정작 미안해한 일은 없다. 내 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해야, 남도 내 몸을 사랑해 주고 더불어 나도 남을 사랑할 줄 알 텐데……. 우리의 몸에는 우주의 진리가 숨어있다고 하는데 내 몸을 사랑하면 결국 우주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지나친 억설일까? 건강도 나를 사랑할 때 쉽게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다. 사랑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사랑한다며 꽃이라도 한 송이 달아 주면 그 설움이 반으로 줄어들지?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이 세상과 첫 대면하게 되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튼실한 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행이란 여러 곳의 문화유적과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며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은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걸음이었다. 찬란했던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도 어느 순간 멸망하는 수난사를 확인하며 권력이나 행복은 영원할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부귀영화를 위한 거보巨步보다 소소한 일상을 이어갈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어느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다. 발아,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다오. 나다운 삶을 찾아 하루하루를 걸어야 하니까.

 

그녀의 마사지가 절정에 다다른다. 발등과 발가락은 물론이고 발바닥과 종아리까지 혈맥에 찾아 꾹꾹 눌러주며 지압을 한다. 조금은 강하게 조금은 약하게 리드미컬하다. 봄눈 녹듯 피로가 풀린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대단원을 마무리하듯…….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나를 나르시스에 이르게 한다. 부풀어 오른 감정에 취해 있을 때 그녀가 발등을 톡톡 친다.

그만 일어나자. 내일 또 다른 길로 나서야 하니까.’

밖에는 황홀한 프놈펜의 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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