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상식이 실종된 나라
공정과 상식이 실종된 나라
  • 김규원
  • 승인 2023.12.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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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날씨가 매섭게 차다. 포근하던 겨울이 ‘언제 그랬더냐?’라는 듯 표변했다. 하긴 표변이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해야 옳겠다. 그동안 겨울이 겨울답지 않았던 걸 일상인 듯 생각하는 마음이 비정상이라고 고치면 추위는 당연한 현상이 된다.

비정상으로 따뜻하던 날씨를 일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던 마음처럼 요즘의 이상한 나라 정치도 으레 그렇거니 하는 습관적 용인(容認)이 번지고 있다.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온갖 해괴한 정치행태에 아연하던 국민이 요즘은 거의 ‘그렇거니’할 만큼 무덤덤하다.

전라북도의회가 지난 13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대통령 결단 촉구 건의안을 도의회 본회의에서 채택했다고 한다. 도의회가 중앙정치에 관한 건의안을 의결하여 전달한 일은 퍽 이례적이고 참신하다는 생각이다.

건의안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 내정 철회, 대통령 추천 위원만으로 운영된 방통위 정상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방송 3법 개정안 처리 협조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건의안을 발의한 윤영숙 전북도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자유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대통령의 공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우리 사회에 불쾌한 공명만 남기고 있다”며 “정국 난맥상 중 언론 통제 망령의 부활이 가장 심각하다”고 했다.

윤 의원은 또, “가뜩이나 현 정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검찰 공화국’인 상황에서 후임 방통위원장마저 검찰 출신 인사를 앉히겠다는 것은 상식의 언어로는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행태”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안건은 재석의원 30인 전원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검사 출신이며 현재 국민권익위원장인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를 내정했다. 지난 7월 국민권익위원장에 취임한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는 그동안 남영진 KBS 이사장과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이사장 등 해임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인사 기준은 오로지 철저한 보수주의 인사로 누가 뭐라든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충성할 인물을 선택하는 듯하다. 과거의 행적이나 외부 인물평 따위는 무시하고 야당이나 국민의 시선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 통제에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을 인물들을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영 방송 우두머리로 앉히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정부를 지지하고 순응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숱한 정변과 상식 이하의 정권에 시달리면서 국민은 깨어났다.

전북도의회가 건의문을 보냈다 해서 대통령이 인사를 철회하거나 잠시라도 마음을 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라면 애당초부터 문제 인물들만 골라서 인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건의안 따위(?)는 보고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을 보면 단 하나, 오로지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정치, 대통령을 위한 정치, 대통령에 의한 정치가 있을 뿐이다. 그 기준점을 벗어나 대통령의 ‘격노(激怒)’가 벼락처럼 꽂힐까 두려워한다.

벌써 3번째 비대위 체제로 돌아가는 국민의힘이 점점 원래 우려하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집권 19개월에 3번이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집안 사정도 사정이려니와 그 달라지는 방향이 나침판이 남북을 가리키듯 오로지 대통령의 뜻만을 지향하는 게 문제다.

나라 정치가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고 한 사람의 뜻에 따르는 정치를 ‘독재’라고 말한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정치가 민주주의다. 국민이 정권에 바라는 정치, 주인이 원하는 정치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공정과 정의였다.

그런데 그 공정과 정의는 그저 취임사를 꾸미는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독단으로 치달아 이제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불통’ 대통령으로 변하는 듯하다. 곳곳에서 대통령의 ‘격노(激怒)’가 터져 나와 그들은 떨고, 국민은 의아해 한다.

바이든 – 날리면 사건에서, 채 해병 사망사건에 책임자로 지목되었던 인물과 관련한 격노, 잼버리 파행 등.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를 바랐는데 대표직을 사퇴하고 총선 출마로 가닥을 잡자 먼 네덜란드에서 격노가 터졌다고 한다.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 진행될 수는 없다. 대통령 아니라, 황제라 해도, 더구나 얼마나 밝디 밝은 세상인가? 이런 세상이 한 사람의 뜻대로 흐를 이치가 없고 그렇게 흘러서도 안 된다. 다양성의 세상을 내 손아귀에 쥘 수는 더욱 없다.

최고 권력자의 분노 표출은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더구나 비위 맞추기가 일상화한 이 나라 정치 구도에서는 더욱 그 여진이 심하게 영향을 끼친다. 거기다 그 분노가 어쩌다 나오는 게 아니라 잦은 일상처럼 터져 나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시도 때도 없는 분노에 아부꾼이 득실거리는 정부 여당에서는 그 분노에 한술 더 떠서 과도한 후속 조치가 나오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차지가 된다. 지난번 잼버리 파행에 새만금 예산이 송두리째 날아간 사례가 그 증거다.

대통령이 ‘연구 단체의 카르텔’ 어쩌구 지나가는 말에 새해 R&D 예산이 뭉텅 잘려나간 일도 눈치 보는 정부가 저지른 참사에 속한다. 그런데 격노라고 지칭하는 일이 자주 나오게 되니 나라 정치와 정부 시책이 널뛰듯 갈피를 잡지 못하나 싶다.

2023년이 저물어 딱 2주일 후면 2024년이다. 22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아직도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 잇속을 챙기느라 영혼까지 파는 모리배 정치가 종식되는 새 정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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