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늙어가는 아이들
나를 따라 늙어가는 아이들
  • 김규원
  • 승인 2023.12.0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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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용만/수필가
이용만/수필가

큰 애가 혈압이 높아 병원에서 24시간 혈압측정기를 달고 왔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를 따라 자라나던 아이들을 바라볼 때가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나를 따라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은 세월이라는 놈이다.

그 녀석은 제 갈 길을 가면서 혼자 가지 않고 많은 것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조금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뭉텅 들고 가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리고 남아 있는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바꾸어 놓아 버린다. 곱던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을 파놓고, 팔팔하던 기운도 시들게 해 버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월이라는 놈은 나에게 달라붙어 어느새 1년이 가고 5년이 가고 10년이 가더니 한 세대라고 하는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자식들에게까지 해를 끼치고 있다. 그러고도 저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다.

사진첩에 있는 큰애의 모습은 영원히 늙지 않을 모습이다. 마냥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포동포동 살결도 곱다. 그런 아이인데 무슨 혈압이 높아지며 신경통이 생기는 걸까?

전에 불혹을 넘긴 나에게 새치가 생기는 것을 본 어머니가 중얼거리셨다.

세상에, 우리 아들에게 벌써 흰머리가 생기다니.’

그때의 어머니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지난 추석 때 아내가 몸이 아파 고생을 많이 했다. 허리협착증이 심해져 다리를 절뚝거리며 추석 준비를 하고 가족들 먹을 것을 챙겼다. 그러다 보니 아픈 이야기가 나왔다.

아내에게는 허리협착증 말고도 미주신경성실신이라는 질환이 있다. 몸이 약해져 면역력이 떨어지면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고 어지러워지면서 쓰러진다. 그리고 숨이 가빠하고 몸부림친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다. 천질이라고 하는 뇌전증과는 다른 별개의 병이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면 이상이 없단다. 원인도 치료 방법도 없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기력이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이미 이런 증상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이다. 이것도 내림이 된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유전자 속에 이런 것까지 물려줄 게 뭐냐는 말에 웃기는 했지만, 마음은 심란하다.

그것뿐이 아니다. 나에게 있는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굽는 무지외반증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느새 아이들이 40대 후반에 들어서 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부모의 병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늙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가지고 있던 병까지 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늙어감이 서러웠는데 이제는 자식들이 함께 늙어감이 안타깝다.

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살아온 발자취에 대한 이 말이 참 아픈 말이다.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께서 어찌하여 한 차례 지나온 인생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게 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어느 한 도막만이라도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올 수 있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의 실수다.

십 년만 젊었어도

수많은 사람이 아쉬워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했던 사람이 십 년이 지난 뒤에 다시 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문득 나를 돌아본 적이 있다. 나도 십 년 뒤에 저런 말을 하겠구나. 그런데 그 십 년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지금부터 십 년 뒤에 같은 말을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벌떡 일어서자. 그리고 무언가는 하자. 십 년 뒤에 후회하지 말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는 십 년만 젊었어도가 아닌 것 같다. 5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른다. 어쩌면 1년일 수도 있다. 사람은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로, 하던 일을 못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이 소중한 것이다.

 

다시 펼쳐본 앨범 속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닮은 이 아이들이 나를 따라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발 아픈 것만은 따라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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