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친절(親切)
향기로운 친절(親切)
  • 김규원
  • 승인 2023.11.0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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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섭/수필가
문광섭/수필가

“아버님, 천천히 올라오세요!”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순간, 우리 작은며느리 얼굴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그 아니고서 나더러 아버님이라고 할 사람이 없어서다. 한해 전, 평화동 꽃밭정이노인복지관에 가려고 시내버스에 오르면서 일어난 일이다.

평소엔 내가 먼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먼저 건네는데, 그날은 운전기사가 먼저 인사하는 바람에 어리둥절해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했다. 다음 정류장에서도 여자 운전기사는 “어머님, 앞쪽 자리에 앉으셔요. 내릴 때 말씀만 하시고요.”라고 했다.

그동안 승용차만 이용한 탓에 이런 일이 없어서 너무나 감동했기에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지금 어느 특정 기사 한 사람을 칭찬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엊그제도 송천동에서 전주내과병원이 자리한 중화산동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 앞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내릴 때를 생각해 뒷좌석에 앉으니,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나 전화기 사용에 신경이 쓰여서 얼마 전부터 앞좌석에 앉기로 작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운전기사의 행동에 민감해졌다. 한데,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기사가 정류장마다 “어세오세요!” 하는 소리에 또 한 번 놀라서 귀를 의심했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가는 차량 틈에서 운전하는 것만도 힘든데, 손님들에게 일일이 인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자 운전기사나 남자 버스기사 모두 시종 손님께 인사를 건네었다. 갑자기 버스회사 이름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같은 회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왜냐면 두 기사의 친절한 인사 방식이 어딘지 닮은 데가 있어서였다.

시내버스엔 오르는 문 위쪽에 회사명과 차량번호, 운전기사 명패도 꽂혀 있다. 작년에 버스를 내리면서 회사 이름과 차량번호를 메모해 두었었다. 오늘도 목적지까지 가면서 ‘같을까? 다를까?’를 생각하며,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20여 분을 보냈다. 병원 앞 정류장에 도착해 내리면서 문 위쪽을 슬쩍 보았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정말 같은 회사였다. 내 예감이 우연히 맞아 떨어진 일이겠지만.

내가 잘 써먹는 예화가 하나 있다. 낚시하면서 터득한 경험인데, ‘바닥이 깨끗하면 붕어 빛깔도 하얗다. 흙바탕이면 누렇고, 수초가 깔린 곳에선 약간 검은 색이 돋는 붕어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생태계 환경에 적응하고 자기 보호를 위해 색깔이 닮아 간다. 두 운전기사가 속한 회사의 방침과 모범 운전기사로부터 비롯된 친절함이 후배 기사들에게도 이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가정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엔 시내버스마다 ‘버스가 멈추기 전에 절대 일어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또한 안내 방송을 하거나 기사가 수시로 안내하면서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일은 이제 생긴 게 아니고 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갑자기 버스마다 일제히 독려하는 걸 본다. 더구나 버스마다 다르긴 해도 완전히 내릴 때까지 멈추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이 든 노약자는 오르기도 힘들지만, 특히 내릴 때가 위험하고 힘들어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직도 내리는 게 걱정돼서 미리 일어서는 사람도 있어 기사들의 짜증에 불편할 때도 더러 있다.

나이 든 우리도 지킬 건 지켜서 기사들이 안전운전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협력해야 하고, 차 안에서는 전화기 사용도 최소한 줄여서 안전운전을 도와야 한다. 우리가 지킬 것은 먼저 지켜서 의무를 다하고, 그 다음에 우리들의 권리나 주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친절한 인사와 안전운전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도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려 송천동에서 오르고, E마트 정류장에서 환승하여 다녀왔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붐비지 않아 좋기도 했지만, 기사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는 바람에 기분이 두 배나 즐거웠다. 이젠 우리도 ‘문화시민의 자부심’으로 모든 행동에서 준법과 친절, 매너를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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