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인심과 풍성한 오일장 역사와 발전
넉넉한 인심과 풍성한 오일장 역사와 발전
  • 전주일보
  • 승인 2023.10.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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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일장의 역사와 전북지역의 5일장
남원공설시장 신축 기공식 행사(1970년)
남원공설시장 기공식. 사진=남원시 제공

◆ 오일장의 역사

오일장(五日場)은 말 그대로 닷새마다 서는 시장이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오5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향시는 크게 매일 열리는 상설시와 아침저녁으로 열리는 조석시, 그리고 일정 기간을 두고 열리는 정기시로 나뉜다. 

정기시에는 2일장·3일장·5일장·10일장·15일장·연시(年市) 등이 있었으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한 달에 5일 간격으로 여섯 번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전라도지방에 기근이 심하여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의 말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이에 따라 오일장이 서기 시작한 시기를 조선시대 15세기 말로 전해지고 1592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장시의 수가 증가했고 17세기 후반에 5일 간격으로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편찬된 만기요람에 따르면 전국 8도에 걸쳐 모두 1,061개의 장이 서고 있었다. 전북에서는 전주읍내장과 남원읍내장이 유명했다.

조선의 오일장 체제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을 받았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오일장은 (1·6)·(2·7)·(3·8)·(4·9)·(5·10)의 다섯 가지 형태로 열린다. 오일장의 장 이름은 장이 서는 곳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가령 (1·6)장은 매달 1일·6일·11일·16일·21일·26일 열리는 장을 말한다. 이는 인접해 있는 다른 장터를 연이어 돌며 상품을 팔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들 장시가 닷새 간격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랑을 한 이들은 바로 보부상이다.

보부상들은 생산된 물품들을, 무리를 지어, 혹은 개별적으로 지역을 정해놓고 짊어지고 다니는데 시장과 시장을 옮겨 다니는데 알맞은 기간이 5일이었다고 전해진다.

오일장은 한 지역에서 한 달에 여섯 번을 서게 된다. 하지만 큰 마을 단위로 서게되므로 보통 한 군단위지역에서 많으면 4~5곳의 장이 날짜를 번갈아 가면서 열리게 되고, 이를 군 전체로 보면 사실상 한 달 내내 장이 옮겨 다니면서 열리는 것이다.

남원 공설시장 기공 기념식. /사진=남원시 제공

보부상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봇짐장수는 값이 비싸고 들고 다니기 쉬운 방물과 같은 물건을 팔았고 등짐장수는 소금, 미역, 생선과 같이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팔았다.

이러한 보부상을 장터와 장터를 오가며 산다고 하여 장돌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이 유명하고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오일장이 열리던 저잣거리의 집으로 박정숙 가옥을 보존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일장은 수도권 제일의 오일장으로 불리는 성남 모란장(4·9일장), 500년 역사의 여주장(5·10일장), 안성유기로 이름을 날리던 안성장(2·7일장) 등이 있다. 또 강원도 정선 오일장(2·7일장), 경남 하동의 화개장(1·6일장), 충북 충주장(5·10일장), 음성장(2, 7일장), 전남 구례장(3·8일장), 곡성장(3·8일장) 등이 넉넉한 인심과 풍성함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전북의 오일장

전북의 오일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명성이 꽤 높았다. 

현재 전북에서 유지되고 있는 오일장은 57곳인데 진안이 10곳으로 가장 많다. <*표 참조>

△ 고창, 부안, 정읍
고창 해리장은 2백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는데 원래 명칭은 안자시장이다.
고창장은 고창천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데 예전에는 전북 서북부의 대표 장터로 꼽힐 만큼 규모가 컸다.
신태인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오일장으로 개장됐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신태인역을 중심으로 5일장이 이어지고 있다.
부안 줄포장은 서해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과 곰소에서 담근 젓갈류 등을 주로 판매했다.

옛날 줄포는 전라남도의 법성포, 충청남도의 서천과 함께 남부 서해안의 3대 포구로 조기잡이철에는 칠산어장과 위도근해어장에 많은 객주들이 모여 조기와 젓갈류의 집산과 매출이 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곰소만의 매립으로 옛날의 영화는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곡물·어류·젓갈류의 거래가 활발하다. 

△ 남원, 임실, 순창
남원시장은 조선시대부터 1970년까지는 현재 남원 광한루원인 천거동 187번지 부지에 오일장으로 형성되어 모든 농·수산물과 생활용품을 남원 지역과 인근 7개 군까지 공급했다. 

특히 우시장은 당시 서부 천거리에 일명 곡마당이 형성되어 장날에는 수백 마리의 가축이 매매되는 등 전국 3대 장 중의 하나였다. 

1970년 12월 광한루원이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오일장 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터는 인월장이다. 
인월시장은 조선말부터 전라도와 경상도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으로,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지로 지리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채류, 지리산 흑토종 돼지가 유명하다.

남원과 순창, 장수 3개 시·군과 7개 면의 교통 요충지인 임실 오수시장은 지금도 각 지역에서 장사꾼이 몰려든다.

관촌시장은 사선대가 있는 장터로 인근에는 해발 300m의 고지대에서 맑은 물과 따뜻한 햇빛, 밤낮의 일교차가 만든 독특한 매운맛의 고추시장이 있어 김장철에 특히 인기다.

1923년에 조성된 순창시장은 전성기에는 전국 7대 우시장이 서고 삼베, 자수제품, 감, 갑 등이 거래되는 전국에서 유명한 오일시장이었으나, 70년대 이후 농촌인구 감소로 점점 쇠퇴했다.

△ 익산, 군산, 완주, 김제
익산 황등시장은 조선후기부터 근대화 이전까지 발달한 곳이다. 

물류가 나포, 곰개(현 웅포)등지에서 생선류, 젓갈류, 소금등이 유입되어 시골장으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성장했으며, 1940 - 1960년경까지 우시장과 망건시장도 형성되고 번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완주 봉동장은 도시근교를 이용한 상업영농이 발달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인 생강을 비롯해 왕포도, 양배추, 딸기의 판매가 이뤄진다. 

대야장은 군산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일장이다. '1910년경 임피군 남삼면에서 주민들이 물물교환을 위한 난장을 시초로 씨름, 도박, 농악이 횡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선조 때부터 열린 김제 원평장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호남지방 동학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금구·원평집회가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고창전통시장 1965년 장옥 설립 모습. /사진=고창군 제공

△ 무주, 진안, 장수
장수의 장계장은 30년 전만해도 장계장날이면 경남 함양과 전북 무주·안성·진안·남원·금산·전주 등 각지에서 모여들어 분주한 곳이었다. 지금도 우시장이 성시를 이룬다. 

1986년에 신축한 진안시장은 전국 인삼생산량의 15%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북수삼센터가 있어 인삼거래가 활발하다. 

덕유산 장터란 이름의 안성장터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안성장은 전통시골 오일장으로 생활필수품 및 무공해 농산물이 주로 거래되며, 오미자, 두릅과 당도 높은 사과, 배, 고랭지채소 등도 인기다.

/이행자·김주형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관한 지역신문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사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실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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