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
노각
  • 김규원
  • 승인 2023.10.1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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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백금종/수필가
백금종/수필가

주름지고 늙었다고 우습게 보지 마라.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 왔던 만큼 외피는 거칠고 투박하다. 향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준수한 모습도 아니다.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앉은 행색이나 감칠맛을 품고 있다. 어머니들의 손을 거치면 풍미 그윽한 반찬으로 변신할 줄도 안다.

튼실하고 늘품 있는 젊은것들은 각자의 쓰임에 따라 시시각각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연유로 노경까지 텃밭을 지켰다. 뙤약볕에 몸을 단련하고 뇌성벽력에도 담력을 길러 완숙되어서야 사람들의 품 안에 안겼다. 굽이굽이 생의 여정에서 허공을 뒤흔든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여물대로 여문 삶이다.

 

초봄이었다. 추위가 다 가시기 전에 서릿발 돋은 흙을 이불 삼아 땅속에 묻히는 신세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그리고 우주를 향해서 힘껏 솟아올랐다. 파란 하늘 아래 따스한 봄바람이 우리를 감싸주었다. 노란 꽃 진 자리에 볼록 솟아오른 초록 열매는 해바라기하며 자랐다. 연둣빛 햇살이 출렁일 때나 달무리 아래 사운 대는 풀벌레 소리 고조될 때 시나브로 꿈을 키웠다.

착한 농부들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그 정성에 매료되어서인지 우리는 착하게 자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농부도 순진무구한 우리를 보고 심성이 고와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키우는 보람도 느꼈을 테다.

 

노각은 늙은 오이를 말한다. 늙은 오이라 해서 모든 종류의 오이가 다 노각이라 불리지 않는다. 전래로부터 내려오는 순수 우리의 토종이어야 하고 우리의 토양과 기후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자라난 녀석들이다. 오롯이 우리의 혼과 마음이 깃들어 있는 순혈주의자라고나 할까?

지구가 반의반 바퀴쯤 돌았을까?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건사한 농부는 거친 손으로 거둬들였다. 다음 세대를 위해 종자로 삼고자 하는 뜻도 있었을 텐데 씨앗을 발라낸 후 우리는 새로운 삶에 접어들었다.

반으로 갈라진 우리는 뱃속의 모든 것을 털어냈다. 비우면 가벼워지고 가벼우면 깊어진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나를 낮추면 결국 나를 높이는 길이라는 것도 거니챘다. 사람들도 그러했으면 좀 좋을까? 채우려면 욕심을 내야 하고 욕심을 내면 서로 다투고 인심마저 각박해진다는 것이 명징한 세상 진리 아닌가?

깨끗한 옹기에 군더더기 없는 우리 나신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것도 소금과 술지게미와 함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담금질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다. 미각을 돋우기 위해서는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내몰리는 수난도 감수했다. 쇠붙이를 더욱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천 도의 열 속에 몸을 맡기듯 노각도 그렇게 숙련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두어 달여 자숙自熟의 시간을 보냈을까? 맛깔나게 숙성된 우리를 보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노각 맛은 담백함에 있다. 달지도 맵지도 않고 떫지도 않다. 토속적인 맛 그대로이다. 잘게 썰어 된장, 참기름과 함께 버무려 놓으면 윤기가 자르르 돌고 귀태까지 났다. 할머니는 기력이 쇠하고 입맛이 달아날 때 노각무침을 찾았다. 찬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뜨고 그 위에 우리를 얹어 곁들이면 한 끼니는 무난히 넘겼다.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에도 노각 무침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꽁보리밥에 으레 노각 무침을 싸 주었다. 아삭아삭 사각사각 씹는 소리도 경쾌해서 좋았지만 적당하게 우러나는 짠맛은 식욕을 더욱 돋우었다. 그 힘에 나는 조금은 건강하고 옹골찬 소년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요즈음도 가끔 노각 무침, 노각 냉국을 먹는다. 그러나 왠지 옛 맛이 아니다. 슬그머니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그렇지만 내색은 안 한다. 어머니의 손맛은 향수의 맛이요 아내의 그것은 현실의 맛이다. 향수는 언제나 아련하다. 그리움에 젖는다. 그러기에 향수에 젖은 어머니의 맛이 더 감칠맛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노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많은 이야기가 내게 와 닿았다. 연약하나 긴 생명력을 가진 노각, 지난날 푸른 텃밭의 기운을 왕창 받고 하늘까지도 오르고 싶었던 설렘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겠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련도 감수해야 한다는 묵언의 외침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감칠맛에도 허세를 부릴 줄 모르는 소박한 마음자리가 돋워 보인다. 생의 끝자락에서도 어김없이 그 진수를 펴 보이는 저력 또한 대단해 보인다. 오이의 계절은 끝났지만 제2의 생을 열어가는 노각. 너의 이름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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