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에서 열린 추석 전야제
관촌에서 열린 추석 전야제
  • 김규원
  • 승인 2023.10.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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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영숙/수필가
김영숙/수필가

명절 전에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명절빔을 만져 보고 쓰다듬던 설렘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늘 그립고 넉넉함이 앞서는 이유다. 취직해 도시로 갔던 동네 언니 오빠들이 멋진 옷을 입고 마을 입구에 들어설라치면 평소에 몰랐던 오빠들도 참 멋있어 보였고 뾰족구두를 신은 언니들이 부러워서 나도 커서 돈을 벌게 되면 제일 먼저 구두부터 사 신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또한, 명절이면 동네가 찌렁찌렁 울리도록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도 했고 동네회관이나 공터에 모여 노래자랑으로 마을별 대표들이 노래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내 오빠도 노래자랑에 나가 양은냄비를 상품으로 받아 온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부모 형제, 친인척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회포를 풀던 정겨운 명절이 이제는 세월 따라 변해가고 있다. 고향은 더는 그리운 존재만은 아니고 설렘의 대상도 아닌 듯하다.

언제부턴가 명절이어도 동네는 조용하다. 어떤 어르신은 명절 때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고문이라 하셨다. 자식들이 추석 전에 미리 와서 벌초하고 성묘까지 끝내고 올라갔기에 정작 명절에는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은 그리하시면서도 서운함은 숨기지 못했다. 개중에는 아예 바리바리 봇짐 챙겨서 자식이 사는 곳으로 역이동하시는 분도 일부 계셨다.

또 어떤 어르신은 명절이랍시고 와야 차례만 삐죽 지내고 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덩그러니 또 혼자라며 노인정에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기도 하셨다. 오전이면 주차난으로 시끌시끌하던 아파트 단지 내의 주차장도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언제가 추석이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

작년 명절에 동네 어르신 한 분을 보며 쓴 글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어쩌면 미래의 우리네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섬진강 연가

꽃은 피었다가 지고/ 무성하던 나뭇잎마저 단풍 져 떨어지는데/ 설날 얼굴 한번 삐죽 비치고/ 여태 오지 않는 자식// 바쁜가벼/ 바쁜가벼/ 돌림노래 인양 흥얼거리는/ 기억처럼 허리 굽은 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건강하게 해달라고/ 세상살이 둥글둥글 살게 해달라고/ 해 저문 섬진강 흐르는 만월에// 머리가 땅에 닿을 듯/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추고/ 두 손 모으고 또 모으고

 

이렇듯 세월의 변화에 따라 성묘로 차례를 대신하기도 하고 명절 연휴를 이용해 여행 가면 그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있으니, 고향을 지키는 부모는 알면서도 기다림에 지친 분이 늘어난다. 또한,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으로 이동 수단이 바뀌다 보니 동네 어귀에서 북적이던 귀향 행렬도, 정류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시고, 달빛을 밟고 걷던 정겨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한 달 전에 고향 가는 차표를 사기 위해 밤이슬을 맞아가며 준비하던 그 고생스러움에서도 오로지 고향을 그리며 명절을 기다리던 설렘은 잊은 지 오래다. 다만, 교통체증으로 인한 귀향길, 귀성길이 고생길이라는 아우성과 형식 같은 명절만 있을 뿐이다.

그랬던 명절이 올해는 달랐다. 명절 전날 면사무소 마당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면장님과 지역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들이 힘을 합쳐 귀성객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다. 음악회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통해 갈고 닦은 각 동아리 회원들의 재능기부 공연으로 진행되었으며 모처럼 지역민과 귀성객이 하나 되어 조용했던 마을이 왁자지껄했다.

공연은 흥겨운 고고 장구 동아리가 힘찬 출발을 시작으로 하모니카 동아리, 민요, 시 낭송, 전자 기타 연주, 색소폰, 기타동아리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귀성객 노래자랑이었다. 양은냄비는 아니지만, 화장지, 세제, 라면 등 생활용품으로 구성된 상품과 푸짐한 경품으로 공연자나 관람자나 다 같이 흥겨운 시간이었고 아주 특별한 추석 전야였다.

나도 음식 장만으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내가 속한 고고 장구 동아리가 첫 무대를 장식해서 신명 나게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달빛이 환하게 면사무소 마당을 덮을 즈음 향수를 느낄만한 차분한 시 낭송으로 그 분위기에 동참할 수 있어서 더 부듯한 날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덕담같이 앞으로도 명절이 이번 추석 명절만큼만 같아도 참 좋겠다 싶다.

세상은 변해서 명절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보름달은 여전히 성미산 산등성을 넘어 휘영청 떠올랐다. 우리가 뛰어놀던 앞산이, 개울이 그리고 시끌벅적하던 버스 정류장의 추억이 여전히 고개를 빼고 나의 정서를 흔들겠지만, 올해는 가끔은 달빛 밟던 그 정겨움을 잊지 않을 양념처럼 열린 관촌면 추석 전야제가 있어서 어느 해보다 풍성한 한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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