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사(巡査)온다. 울음 그쳐라"
"순사(巡査)온다. 울음 그쳐라"
  • 신영배
  • 승인 2023.07.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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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조선시대에 가장 무서운 건 호랑이였다. 서울 인왕산에도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고 산골 마을에서는 심심찮게 호랑이가 민가를 덮쳐 가축을 물어가고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 호랑이에게 당하는 일을 호환(虎患)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울며 보채면 “울면 호랑이 온다.”라고 아이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어 달랬다. 조선시대의 호랑이는 민간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었고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일제가 이 나라를 강점하면서 호랑이가 ‘순사’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악랄하게 통치하는데 일본 경찰의 최하 계급인 순사를 활용했다. 번득이는 눈으로 조선인들을 감시하며 긴 칼을 차고 다니며 걸핏하면 빼 들어 목숨을 위협했다. “울면 순사 와-” 한 마디면 울던 아이도 놀라서 울음을 그쳤다.

조선인이면서 동족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주구(走狗)였던 순사는 혐오 대상이면서 두려운 존재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며 동족을 핍박한 사실들을 그 당시 신문 기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뜬금없이 순사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요즘 이 나라 정치 분위기가 마치 그 시절의 순사가 우리를 들여다보는 듯 등 뒤가 서늘해서이다.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걸어가다 보면 뭔가 날 지켜보는 듯하고 자꾸만 오싹해지던 그런 느낌이 요즈음에 자주 든다.

이런 생각은 기자만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도 꼭집어 말할순 없지만 뭔가 점점 조여드는 느낌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이 정권이 출발해 1주년이 되었을 즈음에 빈번하게 보도되던 광화문 광장 시위 소식도 드물어지고 별로 보이지 않던 윤 대통령 얼굴이 자주 TV에 등장한다.

친구들끼리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전에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는데, 요즘은 말을 하려다가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는 사람도 상당하다. 마치 군부 독재 시대에 막걸릿집 풍경처럼 요즘 술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해 나라의 핵심 요직을 ‘검사’가 차지하고 극우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앉으면서 생긴 새로운 느낌이다. 세계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이 나라 정치는 지난 1960~70년대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지난 4월, 국민의힘 지도부가 친윤 일색으로 바뀌고 이준석과 안철수가 찍혀 나가 지금은 아예 존재조차 없어졌다. 그들의 역할은 정권을 차지하는 시점까지였다. 정부 요직과 핵심 부서는 모두 검사나 연고(緣故) 인물들이 차지했다. 한마디로 '검사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다.

정부 인사의 기준이 따로 있지 않고 맹목적 충성자들과 개인적으로 얽힌 인연이 판단 기준인 듯했다. 전임 대통령에게 극도의 혐오를 씌우고 욕하던 인물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으로 발탁되고 역도 선수 출신이 차관에 기용됐다.

극우 유튜버이던 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운영한 ‘김채환의 시사이다’에서는 문재인 전임 대통령을 비방하는 정상적인 사고로는 보기 어려운 내용의 유튜브가 얼마 전까지는 여럿꼭지가 올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비공개 영상으로 처리돼 확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나 국제회의 참석 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웃음거리가 언론에 보도되고 국제적인 망신을 여러 차례 당했다. 그러면서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에 제재를 가하고 일부 언론을 손보았다. 

‘바이든 – 날리면’을 비롯해 대통령 부부가 이런저런 언행으로 망신살을 이어왔다. 얼마 전에는 명품 쇼핑 의혹과 수해로 국민이 희생되고 있는데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행보로 국민과 언론의 빈축을 샀다.

미국이 우리 정부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져도 대통령실에서는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이 나라 안보 총책임자인 국가 안보실장이 말했다. 내 안방을 허락없이 도청하는 일이 악의가 없다니 할 말이 없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동안 갖가지 사안들이 불거지고 실수 연발이었지만,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국민 앞에 사과하거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제왕(帝王)은 불치(不恥)’라던 고대 제국의 황제처럼.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기자는 그 힘의 원천이 바로 ‘검찰 왕국’에 있다고 본다. 법 집행을 틀어쥐고 있으니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정치판에서 굴러온 인사들은 저마다 검찰에 약점이 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방향을 알 수 없는 막무가내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비판하는 척하다가 금세 조용해진다. 꿈나라에서 가위눌린 사람들처럼 야당 국회의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한때 각 종교단체와 사회단체가 다투어 정권을 비판하던 목소리도 잦아들어 이젠 잘 들리지 않는다.

양손에 틀어쥔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사건을 주무르고 요리하는 솜씨도 일류 요리사를 능가한다. 조국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는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돼 4년 징역형을 살고 있다. 반면 대통령의 장모 최 씨는 통장 잔액를 위조해 증거로 사용하고 막대한 이익을 취했음에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대통령의 입김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커녕 뒤흔들어 흩트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잘난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법부 인사까지 주무르도록 규정해 그 아픈 폐해를 실감하는 오늘이다.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나라 대한민국. 독도를 제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모든 것을 양보했다.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용인했다. 국민만 보고 간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윤 대통령 당선 후에 "여론과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라는 이유를 지금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론이 뭐라 해도 내 맘대로 하겠다는 그의 뱃심에는 든든한 검찰이 버티고 있었음을 짐작한다. 일제시대 무서운 ‘순사’의 칼집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살아나와 모두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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