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석탑 국보급 유물에 붙여
미륵사지석탑 국보급 유물에 붙여
  • 고재홍
  • 승인 2009.01.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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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석탑에서 국보급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등 사리장엄(舍利莊嚴)과 백제 특유의 머리꽂 모양의 은제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백여 점이 발견돼 익산이 최대 경사를 맞았다. 특히 무령왕릉 및 금동대향로와 함께 백제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중요유물로 여겨져 '국가식품클러스터' 유치와 함께 익산시에 겹경사가 줄지어 쏟아졌다. 이를 백제 무왕을 전후한 마한.백제 문화적 융성기, 호남선 철도개통 및 원불교 창시와 총부건립에 이어, 익산시가 세번째 물질적. 문화적 융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금마면 기양리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 석탑 1층 심주(心柱) 윗면 중앙 사리공(舍利孔)에서 국보급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등 사리장엄 등 유물 5백여 점을 발견했다고 미륵사지석탑보수정비사업단 2층에서 19일 공개했다. 이날 현장설명회는 국회 조배숙 의원과 이한수 시장은 물론 전국에서 수백명 언론인과 주민 등이 몰려든 가운데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 등이 인사말에 이어 직접 발굴과정 설명과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사리호'는 탑에 보관하는 사리 항아리이고, '사리봉안기'는 석탑 조성내력을 적은 것으로 미륵사지와 석탑 연구에 획기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처럼 미륵사 창건 시기와 내력이 정확히 명문으로 발견돼 익산시는 온통 환영과 축제 분위기다. 그간 '서동요'와 삼국유사는 물론 구전설화는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년)과 진평왕 딸인 선화공주가 사자암에 가던 도중 부처가 나타나 공주의 간청으로 미륵사지를 세웠다고 했지만, 이번 발견 기록에는 그의 왕후가 백제 최고 관직 좌평(佐平)의 딸이라는 문구가 발견돼 주목된다.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 딸로 오랜 세월 선인(善因: 선한 인연)을 심어"라는 구절이 발견됐는데 이를 '백제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사택'은 당시 백제 8대 성(姓) 중 하나다. '사리호'는 높이 13cm, 어깨폭 7.7cm로 병 모양에 뚜껑이 있는 형태며 표면에 세공기법이 뛰어난 문양을 다양하게 새겨 국보급 가운데서도 최상급이다. 금판에 총 193개 글자가 적힌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금판(金板)을 이용해 글자를 음각(陰刻)하고 주칠(朱漆)로 썼는데 석탑은 물론 미륵사 창건 내력을 증언하는 유물로 백제 무왕 재위 40년인 서기 639년 무왕의 왕후가 '왕실안녕'을 기원하며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사리를 봉안했다고 기록돼 가람과 석탑 창건 목적과 시기가 명백해졌다.
'봉안기' 글씨는 선명해 문헌사와 백제시대 서체연구에 큰 획을 그을 유물로 알려졌다. 이날 이건무(李健茂) 문화재청장은 인사말에서 "모두가 어려운 시기 힘을 내시라고 이런 경사가 있는 것 같다"며 환영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8년 80억원으로 서탑 '해체복원'에 착수한 사업을 2007년까지 완료 계획이었으나 완전 해체도 안된 상태에서 예산 대부분을 소진해 사업기간을 2014년까지 7년 연장하고, 사업비도 60억원을 증액했다. 이 연구소 산하 미륵사지발굴정비단은 올해까지 해체를 완료하고 2014년까지 문화재적 가치를 유지토록 과거 부재 1천여톤만을 활용해 1~3층은 '완벽복원'하고, 4~6층은 균형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복원'한다. 우여곡절을 거친 해체의 끝자락에 대형 국보급 유물 등이 쏟아진 것이다. 무왕의 별궁이나 일시적 천도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국보 제289호 왕궁리오층석탑에, 1965년 이를 해체하면서 발견된 순금금강경판과 사리병 등은 국보 제123호로 지정돼 국보 11호인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익산시는 국보만 3개를 보유했다. 여기에 국보급 유물이 추가발견돼 왕궁리와 미륵사지는 석탑과 유물이 각각 국보가 되는 진기록을 연출한 전망이다.

이는 무령왕릉과 부여 능산리 백제 금동대향로 발굴 이상의 획기적 개가다.
이는 익산과 전북은 물론 나라의 경사다. 차분히 심도 있는 연구결과를 지켜보되, 왕궁리 국보처럼 무조건 익산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는 관례를 벗어나 미륵사지유적전시관을 '국립으로 승격'시켜 익산에서 보관.전시하고, 석탑의 조속한 복원은 물론 미륵사 복원에도 관심을 기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31만 시민과 함께 국보급 유물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좋은 일에 삼가하라"는 겸허한 자세로 익산발전에 각계각층이 합심협력해 매진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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