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추우(秋雨)
(기자수첩) 추우(秋雨)
  • 이옥수
  • 승인 2008.10.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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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추우(秋雨) 
 어그제 단비가 내렸다. 전국에 가을가뭄으로 급수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제한 급수니 김장채소에 물을 주느라고 야단법석을 떠드렀는 다행이도 가을비가 내려 주었다
 ‘시경(詩經)’에 “귀뚜라미 요놈 보소. 칠월엔 들판이요, 팔월 달엔 처마 밑. 구월에 문 앞에 서 있더니, 시월엔 나의 침상 밑으로 기어드네(七月在野 八月在宇 九月在戶 十月入我牀下).”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원용하여 택당 이식 선생은 “들국화 활짝 펴라 중구일이 가까운데, 풀벌레도 침상 밑이 편안한지 기어드네.” 하고 읊는다. 이는 택당 선생이 홀로 앉아 술을 마시며 습재(習齋) 권벽(權擘)의 문집을 펼쳐 보다가 ‘추우독작(秋雨獨酌)’이라는 시를 보고 그에 차운하여 지은 시다.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글 “중양절 지났으니 소율도 이제 그만(斷送重陽素律窮)”에 나오는 ‘소율(素律)’은 가을을 말한다.  가을이 오행(五行) 중 금(金)에 속하여 색깔로 보면 백(白)이기 때문에 흴 소(素)자 ‘소율(素律)’이란 어휘를 썼다. 가을이 금인 줄은 “금(金)과 화(火)가 서로 간에 주고받으며(金火遞相承)” 곧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꾸며”라는 말로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이 가을을 이렇게 흰색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하얀 비가 찬 산에 비치니(白雨映寒山), 쭉쭉 은대와 같구나(森森如銀竹)” 하여 ‘백우(白雨)’니 ‘은죽(銀竹)’이니 하는 어휘를 불러다 쓴 이백(李白)의 뜻을 알 만하다. 한유(韓愈)와 맹교(孟郊)의 시 ‘추우연구(秋雨連句)’에 “처마 밑엔 하얀 명주 직각으로 드리우고”라 한 것 역시 가을비를 흰색으로 표현한 예다.
 ‘춘풍추우(春風秋雨)’라는 말이 있는 걸 보아도 비가 보다 주목받는 계절이 가을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을비는 떡 비다’라는 속담도 생겨났다. 풍족한 가을에 이것저것 먹을 것이 많으므로, 비가 와서 일하러 나가지 못하게 되는 날에는 집 안에서 넉넉한 곡식으로 떡이나 해 먹고 지내기가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가을비는 양이 많지 않다. ‘가을비는 빗자루로 피한다’거나 ‘가을비는 턱 밑에서도 긋는다’ 또는 ‘가을비는 장인 나룻 밑에서도 긋는다’는 속담들 모두 가을비가 아주 잠깐 오다가 곧 그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주에 하얀 가을비가 내렸다. 옛 이미지 그대로의 낭만도 보이고, 가뭄 해갈에도 도움을 준 추우(秋雨)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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