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여당 선대위원장?
대통령이 여당 선대위원장?
  • 신영배
  • 승인 2024.03.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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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을 돌며 민생 토론 행사를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도 경기도 용인특례시에서 23번째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경강선 철도 연장선 신설, 반도체고등학교 설립, 복합문화시설 확충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 약속들은 용인갑 선거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이원모 전 대통령 인사비서관의 공약과 같은 내용이다.

대통령이 여당 후보의 공약을 재확인 해준 셈이다. 누가 봐도 여당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운동을 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녹색정의당 이세동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아예 여당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며 “도둑질하지 말라고 경고했더니 이젠 대놓고 물건을 훔치고 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라고 비판하며 윤 대통령을 형사고발 했다. 

윤 대통령은 26일에도 충북 청주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첨단 바이오산업을 반도체 신화를 이어갈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라고 했다. 또 2020년 기준 43조 원대였던 국내 바이오산업 규모를 2035년까지 200조 원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첨단 바이오의 중심에 서다, 충북'이라는 주제로 24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어 "무한한 기회와 엄청난 시장이 있는 첨단 바이오산업 도약을 위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더 속도를 내야 한다"라고 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지역의 숙원사업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을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약속 자체가 터무니없거나 재원 마련이 불확실한데도, 대통령이 약속하면 대다수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다. 비록 거짓으로 들릴지라도 혹시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미련과 희망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민생 토론을 하는 지역을 살펴보면 전북과 광주·전남 등 호남은 아예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야 후보가 간발의 승부를 가리고 있는 이른바 접전지를 찾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법을 잘 활용하는 특수부 검사 출신답다. 

윤 대통령이 선거법과 최고위직 공무원으로서 선거 중립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야당과 다수의 국민이 의심하고 규탄하고 있는, 그것도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발표하는 식의 변형된 ‘민생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일은 국민을 아예 정치공작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의 불공정한 행정행위다.

지난날 선거 개입이 의심되는 발언으로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를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경인 지역 6개 언론사와 가진 합동 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대통령이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한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노 대통은 또 방송 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라는 발언과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두 차례의 기자회견 발언이 보도되자 2004년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당시 한나라당 등 야당은 노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탄핵 소추를 하기도 했다. 

이 일은 대통령의 발언, 특히 선거기간 내에 선심성,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인식시킨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헌정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참여연대는 윤 대통령을 공무원 선거 관여 등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85조와 공무원 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 9조 위반 혐의로 서울시 선관위에 고발했다. 

선거의 기본은 공명정대에서 출발한다.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을 명분으로 각 지역을 돌며 장밋빛 청사진을 지역민들에게 약속하는 것은 사실상 선거 개입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수백조 원이 들어가는 각종 국책사업들을 예산확보 근거도 없이 약속하고 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26일 선거사범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라는 지침을 관계부처에 지휘했다. 현 판세가 여당에 불리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엄정한 선거사범 적발과 집행을 통해 야당 후보들을 옥죄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엄정하고 신속한 법 집행을 통해 선거사범을 엄벌해 공명정대한 선거풍토를 조성하고 후보와 유권자 모두가 선거와 관련된 법을 지킴으로서, 공정사회와 민주주의 완성을 도모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지침은 필자의 귀에는 달리 들린다. 집권 후 2년여 동안 현 정부의 법 집행 내력을 보면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국을 비롯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정적에게는 매우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김건희 여사 명품 사건과 장모 비리 혐의, 양평고속도로 변경 논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 등은 아예 수사하지 않거나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윤 대통령의 엄정한 선거사범 집행 지휘의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총선은 윤 정권에 대한 심판이냐, 아니면 윤 정권을 도와서 더 힘을 쓰도록 밀어주어야 하느냐를 가름하는 마당이다. 선거에 불리한 정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는 야당과의 승부가 아니라 유권자, 즉 국민과의 힘겨루기로 보인다. 

물론 대통령은 선거에서만큼은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불리한 국민 여론을 갖가지 수단을 총동원해 돌파하여 나가겠다는 정권과 국민사이에 맞짱 승부가 보름 앞으로 다가섰다. 국민의 머슴이기보다는 어른으로 군림하려는 정권을 심판할지, 밀어줄지는 각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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