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결혼의 조건
  • 전주일보
  • 승인 2022.02.24 15:2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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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수필가

결혼이란 두 사람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발걸음은 가볍게 즐거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 결혼을 누구는 남들이 하니까 하고, 누구는 매일 밤 집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헤어지기 싫어서 하고, 누구는 정말 사랑해서 하루라도 안 보면 눈에 가시가 돋을 것 같아서 한다는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다양한 이유만큼이나 결혼에 대한 조건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랑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극복할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력이 먼저고 사랑은 두 번째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성격과 인성을 중요시하며 또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직업을 보고 외모를 본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형태가 계속되는 한 결혼의 조건을 따지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난제일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랑은 상대에 눈이 머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 하는 것이리라. 내가 그랬다. 사랑하나만 믿고 공부도 때려치우고 무작정 남편을 따라나섰었다. 그땐 내게 결혼 조건 1순위가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지니 남편의 장점만 보이고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사는 지역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그래 한번 살아봐라, 살아서 꼭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 그때는 부모 마음 알 것이다.’ 하셨지만 내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결혼은 현실이고 곧 생활이다. 연습이 없다. 그런 결혼생활을 사랑하나 믿고 살자니 그 사랑이 한없이 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이 귓전을 파고들기도 했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 사랑을 과대 포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 세월 속에서 나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사랑 없이도 안 되지만 사랑만으로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만 좋으면 됐지, 조건이 무슨 소용이냐’ ‘나머지 조건들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며 남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조언을 일삼았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식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 때쯤 되니 상당히 속물다운 결혼 조건에 관심 두는 나를 발견했다. 말로는 성격과 인성을 보라고 하면서도 직업이 뭐냐? 수입이 얼마냐? 집은 있느냐? 이런 부수적인 조건에 더 관심을 두는 양면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 짓고 말았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사위를 봤다. 서른 살이 넘어도 결혼할 생각을 안 하던 딸이 느닷없이 결혼하겠다며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고 결혼하겠다는 그 자체만으로 고맙고 기특해서 상견례와 결혼식까지 석 달 만에 다 해치웠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30대 미혼율이 40%가 넘는다는 뉴스를 봤다.

열 명 중에 네 명은 결혼을 안 했다는 것인데 느닷없이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며 훤칠하고 인사성까지 바른 신랑감을 데려왔으니 조건이 뭐가 더 필요했을까?  다만 그 어떤 조건을 우선으로 두든지 간에 그 밑바탕에는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사랑이 깔려있을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허락했고 주례사 대신 덕담도 이렇게 했다.

때로는 자신을 버려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서로에게 꽁꽁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비바람에 흔들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협곡을 만나 방황하기도 하지.

  엄마 아빠가 한 삼십 년 넘게 살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알겠더라. 몽돌처럼 시나브로 동글동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모두가 사랑이란 주춧돌이 늘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  를 등에 업고 가겠다는 다짐이란다. 설사 힘들고 버거워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는 책임의 다른 말이기도 해.

  살다가 부득이 내려놓아야 할 짐이 있다면 두 손만은 꼭 잡고 걸어라. 그 누가 뭐라 해도 마주 잡은 손은 놓지 말아라. 주인은 싸우든지 말든지 그저 꼭 잡은 두 손은 언제나 따뜻할 거야.

  살면서 삐걱거리고 고장 난 부분이 있다면 서로 고쳐가며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예쁘게 가꾸어 나갔듯이 너희도 너희만의 별을 꾸미며 잘 살아가거라.’ --생략.

 정말 그렇다. 몹시 미웠던 적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몹시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세월 아래 끼워놓은 사랑이라는 주춧돌이 버텨주는 한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랑만으로도 어렵지만, 사랑 없이도 안되는 게 결혼이고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결혼생활의 진정한 묘약은 사랑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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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호 2022-02-25 10:42:41
눈물이 핑 도네요ㅜ

쫑쫑이 2022-02-25 10:33:36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ㅜ.ㅜ

주민맨 2022-02-25 10:29:47
꽃길만걸으세요

선물 2022-02-24 23:17:09
잔잔한 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