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노인네 명사
노인, 노인네 명사
  • 신영배
  • 승인 2024.10.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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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사)천년전주한지포럼 김정기 대표

참 무뚝뚝. 무표정이다. 드디어 터졌다. “선생님 인사하면 좀 받읍시다. 손님 맞는 분이, 손님이 먼저 하면. 그런 거 아녀요?” 벌레 씹은 표정이다. 손님의 항의에 급기야 “내가 뭐 잘못했다고 허는 거여∼” 되레 역정이다. 입욕권 받는 이는 얼추 70대 후반. 길어질 뻔한 싸움을 손님이 절제한다. 동네 목욕탕 아침이다.

옆에서 지켜봐도 되레 ‘나이 들었다’하고 자신보다 타인(손님)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안하무인이다. “그니까 영감이라 하는 거여. 나이도 몇 살 안 먹었구만. 거기서 그러는 거여.” 손님이 돌아서며 훈계한다. “저 노인네 왜 근데요?” 항의에 “손님들이 불쾌하다 해도 계속 그러네요. 못 고치니 이해하세요” 탕 밖 프론트 나이 지긋한 노(老)여직원 답변이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이다. 1990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10월 1일을 ‘세계 노인의 날’로 제정했다. 한국은 ‘국군의 날’과 겹친다는 이유로 1997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노인 기준은 현재 만 65세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 우대 조항에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기초연금, 버스·지하철 무임승차 등 여러 복지혜택이 주어졌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안에 1,000만명을 넘어선다. 계속해서 는다. 인구 다섯 명당 한 명이 노인인 시대다. 전북은 175만 인구에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40만 명에 가까울 걸로 판단된다.

초고령 사회 진입에 맞춰 정부는 각종 노인 복지 혜택을 70세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2년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5년부터 10년마다 노인 연령을 1년씩 높이자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해야 하는 부분이다. 국민 절반 이상(52%)이 노년이 시작되는 나이를 70세로 봤다는 정부 조사 결과도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65∼70세인 400여만 국민은 ‘노인 아닌 노인’인 셈이다.

몇 년 전. SNS상에 ‘나이 계산법’이 떠다닌 적이 있다. 가령 60세라 하면 0.7를 곱해 42세로 생각하면 된다(60☓0.7=42)는 셈법이다. 한 세대 전 부모 세대보다는 체력적으로 훨씬 젊어졌다는 소리다. 음식과 약 덕분에, 가만히 앉아있는 상태에서 세상이 젊게 해주었다. 과히 나쁘지 않은 표현이다. 우리나라 평균수명 올해 남 81.4세, 여 87.1세. 평균 84.3세다. 장례식장에 가도 고인들 연세가 보통 90세 안팎이다. 부모 세대가 그러니 지금 세대는 100세 시대가 맞다.

체내 연령 36세로 측정돼, 화제를 모은 일본 이와테현 94세 사토 히데 할머니. 본 나이보다 60세 어린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로 ‘이웃과 즐겁게 살자’라는 인생관을 꼽았다. 그래서인지 장수학자들은 ‘삶은 가치가 있다 마음가짐’을 장수 요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렇다. 노인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마음먹기’다.

기독교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비유가 많이 나온다.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부자가 천국 가기보다 쉽다’.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다’ 등의 말씀은 교만·허세보다는 겸손과 헌신, 봉사를 끝없이 우리에게 주문한다. 
여성학자 김순남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가족 사회학자 데이비드 모건의 말을 빌려 ‘가족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정의했다. 가족은 완성된 의미로 세상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에서 성격과 형태가 얼마든지 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가족처럼 ‘노인’도 자기 하기 나름의 명사 아닌 동사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주변에서 ‘나이 듦’을 이야기하는 ‘노’라는 접두어를 붙여 말할 때 사람들은 많이들 당황스러워한다. 결코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칭찬의 말 ‘노익장’이라는 표현에서조차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노욕(老慾)이나 노(盧)씨 성의 노교수가 아닌 노(老)교수, 노학자, 노스님 속에는 단순히 나이 듦보다는 ‘학식’ ‘연륜’ 등 넉넉함이 묻어나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편안한 미소가 전해진다.

“아∼ 어푸어푸. 아 시원하다.” 간헐적으로 내뿜는 소리에 탕 안이 시끄럽다. 완전 독탕이다. 나이 들었다 과시한다. 한쪽에서 자던 이도 놀라서 벌떡 일어선다.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맘대로다. 뻔뻔하다. 나이 먹은 걸 ‘장땡’으로 아는 자칭 ‘노인네’들이다. “어이구 저게 꼰대지. 챙피한 줄 모르고∼” 한쪽에서 다른 노인이 작게 “쯔쯔”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넉넉해진다는 것이다. 주변에 노인이 된 형님·누나들이 많다. 심지어 친구들도 있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데도 개의치 않고 말들을 해댄다. “나이 드니 눈치 볼 맘도 눈치 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퍽이나 자신 있는 ‘노인네 독백’처럼 들린다.

나이 들었다 핑계 대고, 길거리 무단횡단하는 사람. 음식점에서 그저 반말하는 사람. 주변 개의치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나이를 떠나, 오늘 이런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돌아볼 시점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세상이다. 노인과 노인네는 한 끗 차이다. 노인도 동사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을 만들었다.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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