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더위는 아직도 30℃ 언저리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하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날씨 심술도 세월에 밀려 힘을 못 쓰지 싶다. 이처럼 세상은 버티다가도 순리를 따르는데, 나라 꼴은 여전히 파탄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분야가 좋아지고 있다고 자랑 일색이다. 하지만 국민 경제는 곳곳에서 신음이다.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덕담을 나누며 맞아야 할 지난 추석 명절에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인사였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선언 이후 국민은 혹시라도 병을 얻을까 전전긍긍인 가운데 해병대 사망사건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회 입법 기능은 대통령의 ‘막무가내 거부권’ 행사로 있으나 마나 한 헌법상 권리로 전락했다.
야당은 대통령의 일방 독주에 크게 저항하는 듯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이런 정도가 국민의 눈에 드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럭저럭 동작만 취하다가 슬그머니 발을 빼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야당에 대한 정당 지지도가 늘 여당과 오차 범위 내에 머물고 있다는 짐작이 합리적이다.
강아지가 꼬리를 말고 짖는 건 두려워서다. 도둑을 잡으려는 개는 별로 짖지도 않고 다가가서 바로 물어버린다. 야당도 싸워서 이겨보겠다는 뜻이라면 대차게 덤벼서 뭔가 반응이라도 얻어야 함에도 모든 사안이 용두사미다.
최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엉뚱한 데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10월 16일 치러지는 전라남도 영광군수와 곡성군수 보선에서 두 야당이 맞붙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두 지역을 방문하며 표를 다지는가 하면 조국 대표는 양 지역에서 아예 한 달 살기를 시행 중이라고 한다.
영광군수 선거는 전임 강종만 군수가 지난 2022년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해 군정을 펼치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8촌 조카에게 100만원 제공)로 법원에 기소돼 최종 당선 무효 형을 선고받았다.
영광군수 선거는 지난 2006년과 2014년, 2022년까지 3차례 무소속 후보가 당선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영광에서 무소속 후보가 선전하는 것은 민주당의 과오가 크다"라며 "경선이 곧 본선과 마찬가지인 공천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인물을 뽑지 않아 군민들이 무소속 후보를 뽑아 심판했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광군수 보선에는 민주당 장세일 후보와 조국혁신당 장 현 후보, 진보당 이석하 후보 등 6명이 나서고 있으나 최종 후보로 등록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지난 19일과 20일 2일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장세일 후보가 39.3%, 장 현 후보가 32.7%로 박빙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선거 분위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는 현지 유권자들의 반응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장세일 후보와 장 현 후보 간 1:1 선거로 치러질 경우는 42.2%와 39.2%로 나타나는 등 판세를 가늠하기 어렵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곡성군수에 재선한 이상철 전 군수는 당시 선거가 끝나고 선거에서 수고했던 사무원 등 66명과 함께 식사했다. 모인 사람들은 각자 식비를 내는 제스처로 사진까지 촬영하며 선거법 위반을 피하려 했으나 결국 기소돼 직을 잃었다.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은 각자 낸 듯이 사진을 촬영하고 실제 비용 533만 원을 군수의 지인이 결재한 사실을 지적하며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전 군수는 2년간 군정 수행에서 매니페스토 약속 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곡성군수 재·보궐선거 민주당 후보는 100% 국민경선 방식으로 치러져 조상래 후보가 많은 표차로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크게 반발, 조국혁신당에 입당했다. 조국혁신당에서는 박웅두 후보가 나섰다.
전남 영광과 곡성군수 선거는 그동안 민주당 후보의 절대 강세 지역이었다. 2022년 지방 곡성군수 선거에서도 민주당 이상철 군수가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영광군은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이 불투명해 보이자, 무소속 후보에 표를 몰아주었다.
영광군수 선거 8번 중에서 2006년과 2014년, 2022년 등 3차례 무소속이 당선한 일도 모두 민주당 경선 과정을 문제 삼아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공천 과정 즉 인물을 공천하지 않아서 무소속을 선택했다는 사연은 전북 유권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동안 전라북도에서 실시된 각종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늘 선택지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물론 일부 지역 단체장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여러 차례 당선했다. 임실군의 경우, 현 심 민 군수는 무소속으로 연 3회 당선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필자는 전남 곡성과 영광군 군수 보선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해본다. 당장 2026년 지방선거 때, 전북에서도 조국혁신당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는 기대도 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번 보선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사활을 거는 듯한 행보에는 머리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 정치 아래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갖가지 의혹은 하나도 풀리지 않고 꼴통보수의 나라로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다. 국민은 아플까, 걱정하느라 생병(病)이 나는 지경이고 의혹은 증거인멸과 억지 수사 종결로 치닫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두 야당 대표가 곡성과 영광에 아예 파고 앉아 서로 끄덩이라도 잡을 태세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정당의 이익만을 앞세운 ‘죽고 살기 식’ 전투로 이어질 상황이어서 선거 과정과 결과에 따라서는 두 야당이 먼 거리로 갈라설 수도 있다.
둑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옛말에 ‘하찮은 호박잎 때문에 마음 상한다.’라는 말이 있다. 친구 간 농담 수준의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절교하는 사례도 수없이 보아왔다.
과연 양 정당이 지금 그럴 때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 두 대표는 단체장 보선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허덕이는 민생을 해결하고 외곬 독선으로 치닫고 있는 ‘불도저 정부’에 제동을 걸 방법을 찾아 두 대표가 머리를 맞대야 할 중대한 시기다.
국민과 함께 생존을 걱정을 해야할 시기에 영광ㆍ곡성 주민들의 “뭣이 중헌디? 야권이 똘똘 뭉쳐도 시원찮은데, 지방선거에 헛심만 쓰고 있당가?”라는 한숨 소리가 양당 대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지 참으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