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6월을 기다리며
푸르른 6월을 기다리며
  • 김규원
  • 승인 2023.05.25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수필
백금종/수필가
백금종 / 수필가

6월은 신록이 영그는 달, 젊음이 샘솟고 희망이 눈을 뜨는 달이다. 아픔과 절망의 계곡을 넘어 푸른 벌판으로 내 달리는 달이기도 하다.

초록빛 천지다. 6월의 얼굴이다. 그러하기에 활력이 넘친다. 봄꽃들의 화사한 잔치가 막을 내리면 6월은 푸르게 세상을 꾸미며 화사한 미소로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조금 엷은 듯 미완의 신록이기에 풋풋한 젊음이 맑은 물처럼 번져서 좋다.

신록은 생명력의 표상이다. 논밭을 보라. 신접살림을 차린 작물들이 도란도란 사랑을 속삭이며 몸체를 불려 간다. 사람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림을 늘리면서 한 생을 이어가듯 작물들도 그렇게 자라며 결실의 계절 가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분다.

그것만이 아니다. 산과 들에는 이름조차 모르는 갖가지 기화요초들이 우듬지를 펴며 자기의 영역을 넓힌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자기 본분에 충실한 생명체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눈에 보인다.

6월은 일 년 중 허리의 달로써 인생으로 말하면 중년을 눈앞에 둔 나이다. 중년이라면 살아가는 여정에서 호불호를 알고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연륜이다. 그러하기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잘하는 것은 계속 밀고 나가야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과감히 바로 잡아야 후회 없는 인생 후반을 맞이할 수 있다. 계절도 마찬가지이려니 싶다. 알차고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려면 여름 동안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뙤약볕도 이겨내고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막아내야 한다. 땀 흘리는 농부의 억센 손도 필요하다. 인생의 액셀을 더욱 밟아야 하는 달이 바로 6월이다.

나는 6월의 하늘, 들판, 그리고 녹음에 환호한다. 가슴을 젖히고 푸른 벌판을 달려보라. 5월처럼 상큼하지 않고 7월처럼 뜨거운 열정이 보이지 않지만, 온갖 이름 모를 들꽃들이 은은한 향기로 보답하고 풋풋하고 단내나는 대지의 기운이 내 안으로 막 들어와 살아있음을 느낄수 있다.

아귀다툼하며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그나마도 굳건히 살아가고 있음은 바로 그런 6월의 상큼한 푸르름이 있기 때문이다6월은 푸른 숲속에서 뻐꾹새가 목 놓아 울어대는 계절이다. 지금도 한가한 대낮, 멀리 산그늘에서 뻐꾹새가 울면 나의 젊은 날 초상이 어슴푸레 떠 오른다.

20대의 젊은 시절, 햇빛이 무량하게 쏟아지는 한가한 오후면 유리창 틈새로 보이는 그 숲을 바라보며 나의 불확실한 미래를 파란색으로 칠하곤 했다. 내 가슴에 큐피드를 쏘아 올릴 6월의 신부는 어디에 있을까? 그려보곤 했다.

6월은 뙤약볕과 장마와 비바람의 열정으로 세상을 짙게 짙게 녹음으로 채워준다. 수목들 또한 두꺼운 잎을 하늘 높이 펄럭이고. 과일들도 날마다 더욱 몸피를 불리며 맛을 만드는 영양을 저장한다. 빈약한 것들에서부터 차근차근 채워지는 충만함,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성취감, 푸른빛 세상을 여는 생동감은 머지않은 후일에 풍성함을 안겨주리라는 데에 한 점 의혹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채움에만 열광할 일은 아니다. 채움의 최후에는 결국 비움이 다가오는 법. 여름 동안 채움을 열심히 했으나 가을의 끝자락, 완성한 채움 뒤에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비움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일 터. 우리네 삶 또한 이와 닮은꼴이 아닐까?

모닥불처럼 타오르다 시나브로 시들고 닳아지고 마침내 산산조각 흩어져 버리는 것이 자연이라면 우리의 육신도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굽이마다 허우적거리는 존재라고나 할까? 마치 허공에 손을 펴고 휘둘러 보았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처럼 나는 항상 손에 잡히는 유보다는 잡히지 않는 무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의 여정에 서 있다.

지난봄이 자유분방하고 일탈을 꿈꾸었던 계절이라면, 여름은 분출하는 용암 같은 마음으로 열정이 최고점에 이르는 계절이다. 그 열정의 열매를 하나씩 매달기 시작해 가는 달이 바로 6월이다. 색깔의 향연. 몸피의 절정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쏟아붓는 계절이 6월이다.

훌훌 털고 6월의 품속에 안겨보련다. 빗살처럼 내리쬐는 태양 아래 무성한 녹음이 물결치는 6월의 벌판으로 그리고 생명이 출렁이는 6월의 산으로 바다로 달려보련다. 그곳에는 푸름이 있고 설렘이 있다. 무언가 이루어지리라는 희망도 보인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일을 기약하며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불씨 아닌가? 6월이 푸르러지듯 내 마음도 그렇게 푸르게 물들어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