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없는 간호법 거부권 행사
사과없는 간호법 거부권 행사
  • 신영배
  • 승인 2023.05.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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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윤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16일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가 의결해 공포 절차에 들어간 ‘간호법안 재의를 요구하며 국회에 돌려보냈다.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직역(職域) 간 갈등과 여야 협의 부족 등을 내세웠다.

그는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라고 말하고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라고 했다.

특히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우리 국민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전국의 읍면 단위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이뤄지고 있는 의료행위(?)는 불안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또한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정한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여야 합의 없이 법을 통과시킨다면 그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국민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향후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서는 모두 거부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날 윤 대통령의 말은 의사협회와 이번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며 파업이라는 압력 수단을 내건 의료단체의 말과 일치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간호사들에게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해명조차 없었다. 그 약속은 공허한 허언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대한간호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고 비판한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통령은 봤어도, 지금껏 공약을 정면으로 부정한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권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앞서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 후보가 어떤 협회나 단체에 약속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 공약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16일 자 기사에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11일 대한간호협회와의 간담회에서 신경림 당시 협회장으로부터 간호법 제정 등 내용이 담긴 정책 제안서를 전달받으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제가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간호사들의 지위가 명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이어서 “<당시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당시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같은 달 24일 간호협회와의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간호법안이)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은 (윤석열) 후보가 직접 약속하셨다”라고 보도했다.  

어떤 것이 가짜뉴스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아직도 지록위마(指鹿爲馬) 정치는 계속 중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다시 국회에서 재의를 진할 터이지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2/3 찬성이 있어야 재의결이 가능하다. 재의결이 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 된다.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가 여야 합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뜻이다. 야당과 대화 한 번 하지 않는 대통령이 여야 합의만을 주장하며 거부권으로 국회 입법권을 무효화 한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결정에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와 여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을 무시하고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국회 입법권은 있으나 마나 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는 셈이다. 다수결이란 이해 당사자끼리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표결하는 고육책이다. 그런데도 여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며 독재다.

그러면 문제가 된 간호법은 어떤 과정을 통해 국회에서 심의되고 통과되었는지 살펴보자. 간호사협회는 2022년 3월2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정책본부장과 간호협회장 사이에 정책협약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5월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에 있었다.

법안이 그대로 계류상태에 머물자 민주당 주도로 올 2월에 보건복지위원회 표결로 본회의에 직회부되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법안은 정부로 이송되었다. 법안의 내용은 지난해에 복지위를 통과할 때부터 직역 간 갈등이 예상되었다.

간호법은 의료법 등에서 간호사와 관련된 내용을 옮겨오고 간호사가 의료기관 내에서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 가운데 학력 상한을 지정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업역(業域)을 간호사에 빼앗길까 우려한다.

문제의 핵심은 의사의 업역에 간호사가 진출하면 의사의 권위는 물론 수익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데에 있는것 같다. 감히 간호사들이 의사의 권위와 명예, 그리고 돈벌이를 방해하다니…. 그래서 의료 연대라는 이름의 여타 직역 종사자들과 함께 간호법이 통과되면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것이다.

충돌이 예상되는 법안인 줄 알았으면 간호협회와 반대 직종 대표 간에 중재와 조정을 통해 원만한 타협점을 찾았어야 옳다. 그런 역할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그저 수수방관(袖手傍觀)으로 일관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문제점이 있었는데도 중재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법안이 이송된 뒤에야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통령 거부권으로 법안을 무효화한 것이다. 지난번 양곡관리법처럼 아무리 국회를 통과해도 거부권으로 뭉개버릴 수 있으니 그냥 관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이 손에 있으니 ‘해볼 테면 해 봐라.’라는 생각으로 야당 따위와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위험하고 감당 안 되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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